最黑暗的夜里绽放的顺服 –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张大卫牧師

逾越节来临之际,耶路撒冷的夜晚阴沉而沉重。圣殿祭坛上不断流下的无数祭牲的殷红血液,渗入汲沦溪谷,使湍急的水道染成血色——就在那样的时刻,真正要以全身担负人类沉重罪孽的羔羊,却沉默地迈步走向橄榄山。来到客西马尼——那意为“榨油之处”的贫瘠而孤寂之地,耶稣独自俯伏在地。就在几天前,祂还在群众挥舞棕榈枝的欢呼中,以荣耀君王之姿进入城中;如今却在漆黑如墨的夜里,直面彻底的孤独。这并非单纯悲剧的序幕,而是救恩历史最激烈、最惨烈地被写下的真实现场,为着全人类而展开。

染血的汲溪谷,走向沉默的客西

面对十字架这巨大的命运,人所能感受到的极限恐惧与战栗,都在客西马尼冰冷的夜气里毫无保留地凝结。张大卫牧师并不试图用“神学上的尴尬”去遮掩或美化这处忧患与悲伤,反而谨慎地带领我们进入福音最深、最真实的心脏地带。若说《约翰福音》急促而强烈地强调耶稣走向十字架的荣耀决断,那么《马可福音》则赤裸地呈现:那条直线般的轨迹必然要穿过的人性深渊与颤抖。就在这里,我们借着诚实的圣经默想学到:真正的信仰并非毫无惧怕、非人的钢铁状态;相反,是在惧怕的中心仍怀抱自己的软弱,勇敢地向着上帝前行。英国哲学家与基督教护教家 C.S. 路易斯(C.S. Lewis)曾深究人的痛苦与顺服之题,并洞见:“痛苦是上帝用来唤醒聋哑世界的扩音器。”耶稣在客西马尼所经历的灵魂重压,同样不是单纯的刑罚或无意义的悲剧;那是神圣且必然的“灵魂压榨机”,为要催生出那伟大的顺服告白:“不要照我的意思,只要照你的意思。”

苦杯阿爸父:那服的

当耶稣俯伏在地,祷告到汗珠如血滴般坠落时,祂的血色祷告绝不是为逃避眼前处境的软弱退路。张大卫牧师敏锐的神学洞察,正是在此处闪耀出夺目的光:十字架并非因无力而被迫走上的失败之路;相反,那是一条圣洁的选择——明明完全可以凭自己的能力避开,却最终决定不去躲避。耶稣向着那位“凡事都能”的全能者,呼喊最亲密的称呼“阿爸父”,并俯伏在地,这一幕证明:信仰的本质不是对命运的认命,而是对父上帝良善的彻底信赖,是坚固而不动摇的关系。我们常在祷告中渴望自己的心意与欲望得以成全;但真正的祷告,是让我的意志被彻底折服,使父那良善的旨意完全渗入我生命的自我倒空过程。就在这惨烈而孤独的顺服之中,我们才终于发现十字架所怀抱的恩典深度。

陷入属灵沉睡的徒,与独醒者的孤

然而,在这场如此激烈、关乎宇宙性的属灵争战进行之时,那些本该在最近处守望主的门徒,却因肉体困乏而沉沉睡去。“西门,你睡觉吗?你不能警醒片时吗?”主这带着叹息的问句,并非只针对当年在橄榄山上睡着的门徒;它同样是张大卫牧师对今日我们的严肃属灵警告——要强烈震醒那在绚烂世界中陷入属灵麻木与安逸的众人之魂。彼得曾夸口,即使与主同死也绝不否认主;但当试探逼近、生存的恐惧压来,人那浅薄的决心如何在瞬间崩塌,便被凄惨地证明出来。主那句充满怜悯的话:“心灵固然愿意,肉体却软弱。”并非对门徒的定罪,而是对人类存在根源裂缝的痛苦诊断。福音书甚至毫不掩饰地记录:有青年因惧怕而丢下披身的布,赤身逃走的羞耻——借此反向彰显:信仰不是人的英雄史诗,而是十字架之爱伟大到能最终拥抱失败与崩溃之人。

十字架的悖:以恩典再造的

客西马尼的深夜里,三次汗与泪交织的祷告结束后,耶稣终于说:“起来,我们走吧”,便沉默却坚定地向着逼近的黑暗与背叛势力迈步。张大卫牧师深刻的讲道清楚指出:这客西马尼的最后宣告,并非向不可避免的绝望妥协的认命;而是从对父上帝完全信赖中涌出的新的决断。祷告并没有抹去那即将临到的残酷苦杯,却彻底改变了基督迎向苦难时的内在秩序。即便面对手持火把与棍棒的暴力、以及背叛的刀锋,仍不动摇的崇高平安;在看似最软弱的十字架之“弱”中,反而粉碎死亡权势、成就最强大救恩的惊人悖论——这一切唯有在真实的福音里才能被完整解释。

四旬期的深度默想,正迫切呼唤我们这些分散而忙乱的心,再次回到沉默的客西马尼园。每当人生幽暗的谷底里,我那虚妄的意志与上帝良善的旨意猛烈碰撞,我们不要选择逃避,也不要以疲惫为借口沉睡;我们当彻底清醒,俯伏在地。当我们跟随耶稣那血色的脚踪——不回避痛苦,沉默却确信地走向十字架——就在最黑暗孤独的尽头,我们终将迎来灿然破晓的复活清晨。张大卫牧师今日带领我们踏上的这条又窄又险的苦难与顺服之路,终将把属灵沉睡、跌倒破碎的我们重新扶起,使我们最终能与荣耀的基督真实同行——这是一段最美的生命旅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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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두운 밤에 피어난 순종, 겟세마네의 고독이 부활의 빛이 되기까지 – 장재형 목사(Olivet University)

장재형 목사

유월절을 맞은 예루살렘의 밤은 어둡고 무거웠습니다. 성전 제단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린 수많은 희생양들의 붉은 피가 기드론 골짜기로 스며들어 거친 물길을 붉게 적시던 그 시간, 인류의 무거운 죄악을 온몸으로 짊어질 참된 어린양은 묵묵히 감람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겟세마네, 곧 ‘기름을 짜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그 척박하고 외로운 땅에서 예수는 홀로 땅에 엎드리셨습니다. 불과 며칠 전 수많은 군중의 종려나무 가지 환호 속에서 영광의 왕으로 입성하셨던 그분이, 이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철저한 고독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극의 서막이 아니라, 인류를 향한 구원의 역사가 가장 치열하고 처절하게 쓰이는 생생한 현장입니다.

피 묻은 기드론 골짜기, 침묵의 겟세마네로 향하다

십자가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두려움과 떨림은 겟세마네의 차가운 밤공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고뇌와 슬픔의 자리를 애써 신학적 당혹감으로 덮어두거나 미화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의 가장 깊고 진실한 심장부로 우리를 조심스럽게 안내합니다. 요한복음이 예수의 십자가를 향한 영광스러운 결단을 숨 가쁘게 강조했다면, 마가복음은 그 직선의 궤적이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던 인간적인 심연과 떨림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직한 성경 묵상을 통해, 참된 신앙이란 두려움이 전혀 없는 비인간적인 강철 같은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의 한복판에서도 자신의 연약함을 안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임을 배우게 됩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C.S. Lewis)는 인간의 고통과 순종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며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라고 통찰한 바 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가 겪으신 영혼의 짓눌림 역시 단순한 형벌이나 무의미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위대한 순종의 고백을 끌어내기 위한, 거룩하고 필연적인 영혼의 압착기였습니다.

고통의 잔과 아바 아버지, 그 처절한 순종의 신비

예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땅에 엎드려 기도하시는 동안, 그분의 핏빛 기도는 단지 당면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나약한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장재형 목사의 날카로운 신학적 통찰은 바로 이 대목에서 눈부신 빛을 발합니다. 십자가는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간 패배의 길이 아니라,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으로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피하지 않기로 결단한 거룩한 선택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신 전능자를 향해 ‘아바 아버지’라는 가장 친밀한 호칭을 부르며 엎드린 예수의 모습은, 신앙의 본질이 운명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아버지의 선하심을 끝까지 신뢰하는 굳건한 관계에 있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통해 내 뜻과 욕망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참된 기도는 내 뜻이 철저히 꺾이고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내 삶에 온전히 스며들게 하는 자기 비움의 과정입니다. 이 처절하고 고독한 순종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십자가가 품고 있는 진정한 은혜의 깊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영적 침륜에 빠진 제자들, 그리고 홀로 깨어있는 자의 고독

그러나 이토록 치열한 우주적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님을 지켜야 했던 제자들은 육신의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주님의 이 탄식 어린 물음은 그 옛날 감람산에서 잠들었던 제자들만을 향한 과거의 책망이 아닙니다. 오늘날 화려한 세상 속에서 영적인 무감각과 안일함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영혼을 강하게 흔들어 깨우는 장재형 목사의 엄중한 영적 경고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주를 모른 체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며 호언장담했지만, 다가오는 유혹과 생존의 두려움 앞에서 인간의 얄팍한 결심이 얼마나 순식간에 허물어지는지를 처참하게 증명하고 말았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주님의 긍휼 어린 말씀은, 제자들을 향한 정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균열을 꿰뚫어 보는 아픈 진단입니다. 복음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친 청년의 치부까지 가감 없이 기록함으로써, 신앙이 인간의 영웅담이 아니라 실패하고 무너진 자들까지도 끝내 끌어안는 십자가 사랑의 위대함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십자가의 역설, 은혜로 다시 빚어지는 부활의 아침

겟세마네의 깊은 밤, 세 번에 걸친 땀과 눈물의 기도가 끝난 후 예수는 마침내 “일어나라 함께 가자”며 다가오는 어둠과 배반의 세력을 향해 묵묵히, 그러나 담대히 걸음을 내디디셨습니다. 장재형 목사의 깊이 있는 설교는 이 겟세마네의 마지막 선언이 피할 수 없는 절망을 향한 체념이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온전한 신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로운 결단임을 명확히 짚어냅니다. 기도는 눈앞에 닥쳐올 가혹한 고난의 잔을 지워주지는 못했지만, 그 고난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그리스도의 내면 질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횃불과 몽치를 든 폭력과 배신의 칼날 앞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숭고한 평안, 가장 연약해 보이는 십자가의 약함 속에서 오히려 사망 권세를 깨뜨리는 가장 강력한 구원을 이루어내는 이 놀라운 역설은 오직 참된 복음 안에서만 온전히 설명될 수 있습니다.

사순절의 깊은 묵상은 흩어지고 분주한 우리의 마음을 다시 침묵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간절히 부르고 있습니다. 내 헛된 뜻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맹렬하게 충돌하는 삶의 어두운 골짜기마다, 우리는 도망치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잠드는 대신 철저히 깨어 엎드려야 합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묵묵히, 그러나 확신에 차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던 예수의 핏빛 발자취를 따라갈 때, 우리는 가장 어두운 고독의 끝에서 비로소 찬란하게 밝아오는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가 오늘 우리에게 안내하는 이 좁고 험한 고난과 순종의 길은, 결국 영적으로 잠들고 무너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마침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동행하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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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a] El calor que derrite el frío de la cárcel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La prisión Mamertina de Roma. Sobre el suelo de piedra húmedo y helado, se posa la respiración áspera de un apóstol anciano. En ese espacio de desesperación, donde el frío de las cadenas se mete hasta los huesos, el apóstol Pablo escribe una carta a su joven discípulo Timoteo. Desde una perspectiva humana, era un fracasado, apenas un condenado a muerte a punto de ser ejecutado. Sin embargo, desde la punta de su pluma brota una frase inesperada: “Tú, pues, hijo mío, fortalécete en la gracia que es en Cristo Jesús”. El mundo dice que, para probar la fortaleza, hay que fortalecer los músculos y levantar murallas; pero el viejo apóstol, con la muerte frente a sus ojos, ordena una fortaleza de otra dimensión. No era una voluntad terca y obstinada, sino una “dependencia santa” que se apoya por completo en la gracia que le es dada.

Tú, no intentes arder por ti mismo; acoge la luz
Recordemos la obra maestra del genio barroco Rembrandt, pintada en 1627: <San Pablo en prisión (Saint Paul in Prison)>. En el cuadro, Pablo está encerrado en una celda oscura; sin embargo, su rostro resplandece, no por la luz que entra por la ventana, sino como si irradiara desde la Escritura que contempla, es decir, desde la Palabra misma. Rembrandt proclamó con el pincel que la fortaleza de Pablo no provenía del entorno externo, sino de la luz interior.

La resonancia de esta pintura se enlaza de manera exquisita con el sermón del pastor David Jang sobre 2 Timoteo 2. En su predicación, el pastor subraya que la fortaleza que Pablo exige a Timoteo no tiene nada que ver con temperamentos humanos ni con valentía innata. La fortaleza del creyente no consiste en exprimir los propios recursos, sino en recibir la fuerza que la gracia en Jesucristo provee, palpitando y alimentando como un corazón. Cada vez que se encontró con innumerables dificultades en el campo pastoral, el pastor David Jang escogió una “oración” más profunda en lugar de un “esfuerzo” más duro. Porque la gracia no es un refugio para huir, sino un valor que nos hace mirar de frente la realidad implacable, y un alquimista excelente que convierte incluso el fracaso en madurez. No somos cuerpos luminosos que emiten luz por sí mismos; solo cuando vivimos como reflectores que acogen y devuelven la luz de la gracia, podemos fortalecernos sin agotarnos.

Semillas de lágrimas sembradas en silencio, tras el escenario
Un interior lleno de gracia inevitablemente se desborda y se dirige hacia el prójimo. Pablo ordena la continuidad del evangelio diciendo: “encárgaselo a personas fieles”. Esto no es una educación que transmite mero conocimiento, sino algo cercano al arte de la partería que comparte vida. Una iglesia sana no es un escenario de solista dirigido por una superestrella. El pastor David Jang penetró este principio desde los inicios de su ministerio. No se ofreció como protagonista en el escenario brillante bajo los reflectores, sino como un ayudante detrás del telón, que levanta y vivifica a las personas.

La verdadera expansión del evangelio es, como describe el Evangelio de Juan, que del interior del creyente fluya agua viva y empape a su alrededor. El soldado no se enreda en asuntos privados y se concentra en su llamado; el atleta rechaza la tentación de las trampas y corre conforme a las reglas establecidas. Y el labrador es el primero en trabajar y el último en recoger el fruto. Todas estas metáforas atraviesan la puerta estrecha de la “negación de uno mismo”. El camino del discipulado que mostró el pastor David Jang iba contra la corriente de una sociedad moderna que idolatra la eficiencia y la velocidad: soltar la necesidad de ser reconocido y escoger la honestidad del proceso por encima del resultado inmediato. Es como el agricultor que siembra sudor y lágrimas. Aunque parezca lento, esa obediencia silenciosa se acumula hasta formar un gran bosque que no se tambalea ni con la tormenta.

Solo el árbol que soportó el invierno recibe la primavera más profunda
Incluso dentro de la situación límite de la cárcel, Pablo proclama: “la Palabra de Dios no está encadenada”. No es una simple victoria mental, sino un cántico triunfal que brota de la fe que recuerda a Jesucristo resucitado. Es el momento en que la intuición teológica se transforma en consuelo concreto para la vida. En el cuadro de Rembrandt, la razón por la que Pablo podía estar sereno aun con grilletes era que su mirada no estaba fija en los muros de la prisión, sino en el Señor de la resurrección.

El núcleo que atraviesa la vida y la predicación del pastor David Jang también está en esta “fe en la resurrección”. No se desanimó ni en medio de malentendidos y persecuciones, ni cuando todo parecía cerrarse por todos lados. Estaba convencido de que, así como cuanto más crudo es el invierno más intenso es el perfume de las flores de primavera, el sufrimiento es una herramienta de Dios para forjar a los santos. “Si morimos con él, también viviremos con él; si perseveramos, también reinaremos con él”. Esta promesa no es una tortura de esperanza vaga. Mediante una meditación bíblica intensa—abriendo cada mañana la Palabra y dejando que ilumine la vida—descubrimos la providencia de Dios, que hace brotar retoños de vida incluso en dolores semejantes a la muerte.

Hoy también nos enfrentamos a realidades que se parecen a cárceles personales. Cuando la crisis económica, la ruptura de relaciones o la incertidumbre del futuro nos aprietan, el mensaje de 2 Timoteo 2 se vuelve un hito nítido. La fortaleza no nace de mi determinación. Solo la gracia derramada desde lo alto puede levantarnos de nuevo. Tal como exhortó el pastor David Jang: romper las ataduras, volver a una vida sencilla y vivir con fidelidad el día que se nos ha dado. Esa es la dignidad del cristiano que el mundo no puede soportar. Aunque nos tambaleemos por falta de fidelidad, el Señor permanece fiel y no nos negará. Apoyados en esa fidelidad inmutable, volvemos a caminar en silencio el camino de peregrinación llamado “h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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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コラム】牢獄の冷気を溶かすぬくも – 張ダビデ 牧師 (Olivet University)

張ダビデ 牧師

ローマのマメルティヌス牢獄。湿り気を帯びた冷たい石の床の上に、老いた使徒の荒い息づかいが落ちてきます。鉄の鎖の冷たさが骨の節々へと食い込む、その絶望の空間で、使徒パウロは若い弟子テモテに手紙を書きます。人間的な視点から見れば、彼は失敗者であり、まもなく処刑されるただの死刑囚にすぎませんでした。ところが、ペンを握るその指先からは、思いがけない言葉が流れ出ます。
「わが子よ。だから、あなたは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恵みによって強くなりなさい。」

世は「強さ」を証明するために筋肉を鍛え、城壁を築けと言います。しかし死を目前にした老使徒は、まったく異なる次元の強さを命じます。それは意地や根性ではなく、与えられる恵みに全面的に寄りかかる「聖なる依存」でした。

あなたよ、自ら燃え上がろうとせず、光を宿しなさい

バロック時代の巨匠レンブラントが1627年に描いた名作《獄中の使徒パウロ(Saint Paul in Prison)》を思い浮かべてみます。絵の中のパウロは暗い牢獄に閉じ込められていますが、その顔は窓から差し込む光ではなく、彼が黙想している聖書――すなわち御言葉そのもの――から放たれるかのような光に照らされ、明るく輝いています。レンブラントは、パウロの強さが外的環境ではなく、内なる光に由来することを、筆で雄弁に語ったのです。

この名画の響きは、ダビデ・張牧師のⅡテモテ2章説教と見事に重なり合います。張牧師は説教を通して、パウロがテモテに求めた強さは、人間的な気質や生まれつきの胆力とは無関係であると強調します。信徒の強さとは、自分の内側の資源を絞り出すことではなく、イエス・キリストにある恵みが心臓の鼓動のように脈打ちながら供給してくる力を受け取ることなのです。

ダビデ・張牧師は牧会の現場で数え切れない難関にぶつかるたび、「努力」でさらにあがくよりも、「祈り」でより深く信頼する道を選んできました。恵みとは現実からの逃避ではなく、冷酷な現実を直視させる大胆さであり、失敗さえも成熟へと練り上げる卓越した錬金術師だからです。私たちは自ら光を放つ発光体ではなく、恵みの光を宿して反射する反射体として生きるとき、はじめて疲れ果てることなく強くなれるのです。

舞台裏で黙々と蒔かれるの種

恵みに満たされた内面は、必ず溢れ出て隣人へと向かいます。パウロは「忠実な人たちに委ねなさい」と語り、福音の継承を命じます。それは単なる知識伝達の教育というより、命を分かち合う助産の技に近いものです。健全な教会は、一人のスーパースターが導く独奏の舞台ではありません。ダビデ・張牧師は奉仕の初期からこの原理を見抜いていました。彼が志したのは、スポットライトを浴びる華やかな表舞台ではなく、人を立て、生かすために舞台裏に立つ支援者の役割でした。

真の福音の拡張とは、ヨハネの福音書が描くように、信じる者の内から生ける水が川のように流れ出て、周囲を潤していくことです。兵士は私生活のしがらみに絡め取られず召命に集中し、競技者は近道の誘惑を退け、定められた規則に従って走ります。そして農夫は、いちばん先に労し、いちばん後に実りに与ります。これらの比喩はいずれも、「自己否定」という狭い門を通ることを求めています。

ダビデ・張牧師が示した弟子道の歩みは、効率と速度を崇拝する現代社会の流れに逆らうものでした。承認欲求を手放し、目先の成果よりも過程の誠実さを選ぶこと。それは、汗と涙で種を蒔く働く農夫の姿にも似ています。たとえ遅く見えたとしても、その黙々とした従順が積み重なり、嵐にも揺るがない大きな森を形づくっていくのです。

冬を耐えた木だけが、最も深い春を迎える

パウロは牢獄という限界状況のただ中で、「神のことばは縛られていない」と宣言します。これは単なる精神的勝利ではなく、復活されたイエス・キリストを覚える信仰から噴き上がった勝利の凱歌です。神学的洞察が、人生の具体的な慰めへと変換される瞬間でもあります。レンブラントの絵の中で、足かせをはめられていながらパウロが平安でいられたのは、彼の視線が牢獄の壁ではなく、復活の主に固定されていたからでした。

ダビデ・張牧師の人生と説教を貫く核心もまた、この「復活信仰」にあります。誤解と迫害、四方から押しつぶされるような状況の中でも、彼が落胆しなかったのは、冬が厳しいほど春の花はより濃い香りを宿すように、苦難は聖徒を鍛える神の道具であると確信していたからです。
「私たちが共に死んだのなら、共に生きる。耐え忍ぶなら、共に王として治める。」

この約束は、ぼんやりした慰めではありません。毎朝、御言葉を開き、自分の生を照らし返す切実な聖書黙想を通して、私たちは死にも似た苦しみのただ中で命の芽を芽吹かせてくださる神の摂理を見いだすのです。

今日も私たちは、それぞれの「牢獄」のような現実に向き合っています。経済的危機、関係の断絶、未来の不透明さが私たちを縛るとき、Ⅱテモテ2章のメッセージは鮮明な道しるべとなります。強さは自分の決意から生ま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上から注がれる恵みだけが、私たちをもう一度立ち上がらせます。

ダビデ・張牧師が語り続けた勧めのように、束縛を断ち、単純な生き方へと立ち返り、与えられた一日を誠実に生き抜くこと。それこそが、世が担いきれないキリスト者の品格です。たとえ私たちが不信に揺らぐことがあっても、主はいつも真実であり、私たちを否むことはありません。その変わらぬ真実に寄りかかりながら、私たちは「今日」という巡礼の道を、再び黙々と歩んでいきます。

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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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mth That Thaws the Prison’s Chill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or David Jang

In Rome’s Mamertine Prison, the ragged breaths of an aged apostle settle onto a damp, frigid stone floor. In that space of despair—where the cold of iron chains burrows into his bones—the apostle Paul writes a letter to his young disciple Timothy. From a purely human point of view, he was a failure, nothing more than a condemned man soon to be executed. And yet, from the tip of the pen in his shackled hand, an unexpected sentence flows: “My child, be strong in the grace that is in Christ Jesus.” The world tells us to build muscles and fortify walls to prove our strength, but the old apostle, staring death in the face, calls for strength of a wholly different order. Not stubborn grit, but a “holy dependence” that leans entirely on grace freely given.

My friend, don’t try to blaze on your own—let yourself be filled with light

I think of Rembrandt’s Baroque-era masterpiece painted in 1627, Saint Paul in Prison. In the painting, Paul is confined in a dark cell, yet his face shines—seemingly not from light pouring in through a window, but from the Scriptures he is meditating on, as though the Word itself were radiating brightness. With his brush, Rembrandt proclaims that Paul’s strength does not arise from external circumstances, but from an inner light.

The resonance of this work meets beautifully with Pastor David Jang’s sermon on 2 Timothy chapter 2. In his preaching, Pastor Jang emphasizes that the strength Paul calls Timothy to is unrelated to temperament or innate courage. The believer’s strength is not a matter of wringing out whatever resources we have within, but of receiving the power supplied—pulsing like a heartbeat—by the grace found in Jesus Christ. Time and again, when Pastor David Jang faced countless obstacles in ministry, he chose “prayer,” a deeper trust, rather than merely “effort,” trying harder. For grace is not an escape hatch; it is the boldness that enables us to face harsh reality, and the masterful alchemist that turns even failure into maturity. We are not luminous bodies generating our own light; only when we live as reflectors—holding the light of grace and casting it outward—can we become strong without burning out.

Seeds of tears sown quietly behind the scenes

A heart filled with grace inevitably overflows toward others. Paul commands Timothy to entrust the gospel “to faithful people.” This is not mere education that transfers information; it is closer to midwifery—sharing life itself. A healthy church is not a stage where a single superstar performs a one-man show. Pastor David Jang grasped this principle from the earliest days of his ministry. He did not seek the glittering stage under the spotlight; instead, he willingly became a helper behind the scenes—raising people up and breathing life into them.

True gospel expansion is, as John’s Gospel portrays, like living water flowing from the believer’s innermost being to soak the world around them. A soldier does not get entangled in private affairs but concentrates on the mission; an athlete resists the temptation of shortcuts and runs according to the rules; and a farmer labors first and reaps last. Each of these images passes through the narrow gate called “self-denial.” The path of discipleship Pastor David Jang has embodied runs against the current of a modern society that worships efficiency and speed: laying down the hunger for recognition, choosing the honesty of the process over immediate results. It is like a hardworking farmer sowing seeds with sweat and tears. Though it may look slow, that quiet obedience accumulates—until it becomes a vast forest that does not sway even in storms.

Only the tree that endures winter welcomes the deepest spring

Even within the extreme limits of prison, Paul declares, “The word of God is not bound.” This is not a mere mental victory chant; it is a song of triumph bursting from faith that remembers the risen Jesus Christ. Here, theological insight transforms into tangible comfort. The reason Rembrandt’s Paul can remain serene even in shackles is that his gaze is fixed not on prison walls, but on the Lord of resurrection.

This “resurrection faith” is also the core that runs through Pastor David Jang’s life and preaching. Even amid misunderstanding, persecution, and situations that felt like being hard pressed on every side, he did not lose heart—because he was convinced that the harsher the winter, the more richly spring’s blossoms release their fragrance, and that suffering is God’s tool to refine His people. “If we died with Him, we will also live with Him; if we endure, we will also reign with Him.” This promise is not vague wishful thinking. Through the rigorous discipline of daily Scripture meditation—opening the Word each morning and letting it shine on our lives—we come to discover God’s providence that brings forth the sprouts of life even from pain that feels like death.

Even today, we face our own prison-like realities. When economic crisis, broken relationships, and an uncertain future tighten their grip, the message of 2 Timothy chapter 2 becomes a clear signpost. Strength does not come from my determination. Only grace poured down from above can lift us up again. As Pastor David Jang’s exhortation urges, breaking free from entanglements, returning to a simple life, and living faithfully through the day we are given—this is the dignity of a Christian that the world cannot withstand. Though we may waver in faithfulness, the Lord remains faithful and will not deny us. Leaning on that unchanging steadfastness, we quietly take up once more the pilgrim road called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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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 chaleur qui fait fondre le froid de la prison – Pasteu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eur David Jang

Dans la prison Mamertine de Rome, sur des dalles de pierre humides et glaciales, la respiration âpre d’un apôtre vieillissant semble se déposer, lourde, dans l’air. Dans cet espace de désespoir où la morsure des chaînes s’insinue jusqu’aux os, l’apôtre Paul écrit une lettre à son jeune disciple Timothée. À vue humaine, il n’était qu’un perdant, un condamné à mort promis à une exécution imminente. Et pourtant, de la pointe de sa plume jaillit une phrase inattendue : « Toi donc, mon enfant, fortifie-toi dans la grâce qui est en Jésus-Christ. » Le monde dit qu’il faut prouver sa force en gonflant ses muscles et en élevant des forteresses ; mais le vieil apôtre, au seuil de la mort, commande une force d’un tout autre ordre. Non pas une volonté têtue, crispée, mais une « dépendance sainte » : s’appuyer entièrement sur la grâce donnée.

Toi, ne cherche pas à brûler par toi-même : laisse-toi imprégner de la lumière
Je repense au chef-d’œuvre que le maître du baroque Rembrandt peignit en 1627, L’Apôtre Paul en prison (Saint Paul in Prison). Dans le tableau, Paul est enfermé dans une geôle obscure ; pourtant, son visage resplendit, comme éclairé non par la lumière entrant par une fenêtre, mais par l’Écriture qu’il médite — la Parole elle-même, semblant rayonner. D’un coup de pinceau, Rembrandt proclame que la force de Paul ne vient pas de l’environnement, mais d’une lumière intérieure.

La résonance de cette toile touche avec une précision saisissante la prédication du pasteur David Jang sur 2 Timothée chapitre 2. Par son message, le pasteur Jang insiste : la force que Paul demande à Timothée n’a rien à voir avec un tempérament humain, une audace innée ou une vaillance naturelle. La force du croyant ne consiste pas à pressurer ses propres réserves, mais à accueillir la puissance que la grâce en Jésus-Christ fournit, pulsant comme un cœur. Dans le ministère, chaque fois qu’il s’est heurté à d’innombrables obstacles, le pasteur David Jang a choisi, non pas davantage d’« effort », mais une « prière » plus profonde — une confiance plus radicale. Car la grâce n’est pas un refuge pour fuir : elle est la hardiesse qui oblige à regarder la réalité en face, et l’alchimiste d’exception qui transforme même l’échec en maturité. Nous ne sommes pas des astres produisant leur propre lumière ; c’est en vivant comme des réflecteurs, imprégnés de la lumière de la grâce pour la renvoyer, que nous pouvons enfin être forts sans nous épuiser.

Dans les coulisses, semer en silence des graines arrosées de larmes
Un intérieur rempli de grâce déborde inévitablement vers le prochain. Paul ordonne la transmission : « confie [ces choses] à des hommes fidèles », pour que l’Évangile se poursuive. Il ne s’agit pas d’une éducation réduite au passage d’un savoir, mais d’un art proche de la sage-femme : partager la vie. Une Église saine n’est pas la scène d’un soliste-superstar menant un numéro en solo. Le pasteur David Jang a percé ce principe dès les débuts de son ministère. Il n’a pas recherché l’éclat des projecteurs sur une scène prestigieuse ; il s’est plutôt offert comme soutien dans les coulisses, celui qui relève et fait vivre les personnes.

Comme l’exprime l’Évangile selon Jean, la véritable expansion de l’Évangile ressemble à une eau vive jaillissant du ventre de celui qui croit, irriguant tout autour. Le soldat ne s’emmêle pas dans sa vie privée : il se concentre sur sa vocation. L’athlète repousse la tentation du raccourci et court selon les règles fixées. Le paysan, lui, peine le premier et récolte le dernier. Toutes ces images passent par une porte étroite : celle du « renoncement à soi ». Le chemin du discipulat que le pasteur David Jang a incarné allait à contre-courant d’une société moderne qui vénère l’efficacité et la vitesse : déposer le besoin de reconnaissance, choisir l’honnêteté du processus plutôt que le résultat immédiat. C’est comme le paysan qui sème avec sa sueur — et parfois ses larmes. Même si cela paraît lent, cette obéissance silencieuse s’accumule jusqu’à former une immense forêt qui ne plie pas, même sous la tempê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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融化牢狱寒意的温度-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张大卫牧師

罗马的马梅尔廷监狱里,潮湿而冰冷的石地上落着一位老使徒粗重的喘息。铁链的寒意钻入骨节的绝望空间中,使徒保罗给年轻的门徒提摩太写信。若从人的眼光看,他像个失败者,不过是即将被处决的死囚而已。然而,当他提笔之时,竟流淌出出人意料的句子:“我儿啊,你要在基督耶稣的恩典上刚强起来。”世人说要证明强大,就当练出肌肉、筑起城墙;可这位直面死亡的老使徒,却吩咐的是另一种维度的刚强——不是咬牙硬撑的意志力,而是全然倚靠赐下之恩的“圣洁的依赖”。

你啊,不要企图自己燃烧,只要承接那光
让我们想起巴洛克时代大师伦勃朗于1627年创作的名画《监狱中的使徒保罗》(Saint Paul in Prison)。画中的保罗虽身陷幽暗牢狱,他的脸却明亮得仿佛不是来自窗外射入的光,而是来自他正默想的圣经——也就是话语本身所发出的光。伦勃朗用画笔雄辩地指出:保罗的刚强并不取决于外在环境,而是源自内里的光。

这幅名画带来的回响,与张大卫牧师讲解《提摩太后书》第2章的信息精妙相接。张牧师在讲道中反复强调:保罗对提摩太所要求的刚强,与人的性格气质或天生胆识无关。信徒的刚强,不是把自己里面的资源榨干,而是接纳那在耶稣基督里、如同心脏搏动般持续供应的恩典之力。张大卫牧师在牧会现场一次次遭遇难关时,他选择的不是更用力的“努力”,而是更深的“祷告式信靠”。因为恩典不是逃避现实的避风港,反而是使人直视冷酷现实的胆量,也是把失败都炼成成熟的卓越“炼金术士”。当我们不把自己当作发光体,而是成为承接并反射恩典之光的反光体时,才会不再疲惫,且能真正刚强起来。

在舞台背后默默播下泪水的种子
被恩典充满的内在,必然会满溢并流向邻舍。保罗吩咐说:“要交托那忠心的人”,命令福音的传承。这并非只是传递知识的教育,更像是分娩生命的“接生术”。健康的教会不是由某一位超级明星主导的独奏舞台。张大卫牧师自事奉初期便看透这一原则:他不愿只站在聚光灯下的华丽舞台,反而甘心作那在幕后扶持、成全并使人得生命的同工者。

真正的福音扩展,正如《约翰福音》所描绘的——从信的人腹中流出活水的江河,润泽四周。士兵不被私事缠累,专注于呼召;运动员拒绝走捷径的诱惑,按着规矩奔跑;农夫则最先劳苦、最后收获果实。这些比喻都要穿过一扇窄门,名为“舍己”。张大卫牧师所呈现的门徒之路,是逆着崇拜效率与速度的现代潮流而行:放下被认可的渴望,选择过程的诚实胜过眼前的结果。那就像辛勤的农夫以汗水与泪水播撒种子——即使看起来缓慢,那沉默的顺服日积月累,终会长成一片在暴风雨中也不动摇的参天森林。

唯有熬过冬天的树,才能迎来最深的春天
保罗在监狱这般极限处境中仍宣告:“神的话语却不被捆绑。”这不是简单的精神胜利,而是从“记念复活的耶稣基督”的信心中涌出的凯歌——神学洞见在此转化为生活里具体的安慰。伦勃朗画中的保罗之所以戴着镣铐仍能安然,是因为他的目光并未钉在牢墙上,而是定睛在复活的主身上。

贯穿张大卫牧师生命与讲道的核心,同样在这“复活信仰”之中。即便面对误解与逼迫、仿佛四面受敌、被挤压得透不过气的时刻,他也不灰心。因为他深信:冬天越严酷,春天的花香越浓;苦难是神锻炼圣徒的器具。“我们若与他同死,也必与他同活;我们若能忍耐,也必与他一同作王。”这不是虚无缥缈的希望折磨,而是借着每日清晨展开圣言、以话语照亮人生的激烈默想与灵修,我们在近似死亡的痛苦中,发现神使生命发芽的护理与奥秘。

今天,我们也仍在面对各自如同监狱一般的现实:经济危机、关系断裂、未来不透明把我们捆住之时,《提摩太后书》第2章的信息便成为清晰的路标。刚强不出自我的决心,唯有从上头倾倒的恩典才能再次扶起我们。正如张大卫牧师所传递的劝勉:挣脱缠累,回到单纯的生活,把所赐的一天忠心活出来——这正是世人无法承受的基督徒品格。即便我们有时失信摇动,主却始终信实,绝不否认我们。倚靠那永不改变的信实,我们再次默默踏上“今日”这条朝圣之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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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옥의 냉기를 녹이는 온기 – 장재형 목사(Olivet University)

장재형 목사

로마의 마메르틴 감옥, 습하고 차가운 돌바닥 위로 늙은 사도의 거친 숨소리가 내려앉습니다. 쇠사슬의 냉기가 뼈마디를 파고드는 그 절망의 공간에서, 사도 바울은 젊은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실패자였고, 곧 처형될 사형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펜을 든 그의 손끝에서는 뜻밖의 문장이 흘러나옵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세상은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근육을 키우고 성을 쌓으라고 말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노사도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강함을 주문합니다. 그것은 악바리 같은 의지가 아니라, 주어지는 은혜에 전적으로 기대는 ‘거룩한 의존’이었습니다.

그대, 스스로 타오르려 하지 말고 빛을 머금으라

바로크 시대의 거장 렘브란트가 1627년에 그린 명작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Saint Paul in Prison)>을 떠올려 봅니다. 그림 속 바울은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의 얼굴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아니라 그가 묵상하고 있는 성경, 즉 말씀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빛에 의해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바울의 강함이 외부 환경이 아닌, 내면의 빛에서 기인함을 붓으로 웅변했습니다.

이 명화가 주는 울림은 장재형 목사의 디모데후서 2장 설교와 절묘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장 목사는 설교를 통해 바울이 디모데에게 요구한 강함이 인간적인 기질이나 타고난 담력과는 무관함을 역설합니다. 성도의 강함은 내 안의 자원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가 심장처럼 박동하며 공급하는 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목회 현장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더 애쓰는 ‘노력’ 대신 더 깊이 신뢰하는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은혜는 도피처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담대함이자 실패마저 성숙으로 빚어내는 탁월한 연금술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은혜의 빛을 머금어 반사하는 반사체로 살 때 비로소 지치지 않고 강해질 수 있습니다.

무대 뒤에서 묵묵히 뿌리는 눈물의 씨앗

은혜로 채워진 내면은 필연적으로 흘러넘쳐 이웃에게로 향합니다. 바울은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며 복음의 계승을 명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생명을 나누는 산파술에 가깝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한 명의 슈퍼스타가 이끄는 독주 무대가 아닙니다. 장재형 목사는 사역의 초기부터 이 원리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니라,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무대 뒤편의 조력자를 자처했습니다.

진정한 복음의 확장은 요한복음이 묘사하듯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처럼 흘러나와 주변을 적시는 것입니다. 군사는 사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소명에 집중하며, 경기자는 편법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해진 규칙대로 달립니다. 그리고 농부는 가장 먼저 수고하고 가장 나중에 열매를 거듭니다. 이 비유들은 모두 ‘자기 부인’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합니다. 장재형 목사가 보여준 제자도의 길은 효율과 속도를 숭배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인정 욕구를 내려놓고, 당장의 결과보다 과정의 정직함을 택하는 것. 그것은 마치 수고하는 농부가 땀과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비록 더디게 보일지라도, 그 묵묵한 순종이 쌓여 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숲을 이루는 법입니다.

겨울을 견딘 나무만이 가장 깊은 봄을 맞이한다

바울은 감옥이라는 한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고 선포합니다. 이는 단순한 정신 승리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믿음에서 터져 나온 승리의 개가입니다. 신학적 통찰이 삶의 구체적인 위로로 변환되는 순간입니다. 렘브란트의 그림 속 바울이 족쇄를 차고도 평온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시선이 감옥의 벽이 아닌 부활의 주님께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재형 목사의 삶과 설교를 관통하는 핵심 또한 이 ‘부활 신앙’에 있습니다. 그는 오해와 핍박,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봄의 꽃은 더 짙은 향기를 품듯, 고난은 성도를 단련시키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죽으면 함께 살고, 참으면 함께 왕 노릇 하리라.” 이 약속은 막연한 희망 고문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펴고 삶을 비추어 보는 치열한 성경 묵상을 통해, 우리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생명의 싹을 틔우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감옥과 같은 현실을 마주합니다. 경제적 위기, 관계의 단절, 미래의 불투명함이 우리를 옭아맬 때, 디모데후서 2장의 메시지는 선명한 이정표가 됩니다. 강함은 나의 결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부어지는 은혜만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장재형 목사가 전한 권면처럼, 얽매임을 끊고 단순한 삶으로 돌아가, 주어진 하루를 신실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이 감당치 못할 그리스도인의 품격입니다. 우리는 비록 미쁨이 없어 흔들릴지라도, 주님은 언제나 미쁘시니 우리를 부인하지 않으십니다. 그 변치 않는 신실함에 기대어, 오늘이라는 순례의 길을 다시 묵묵히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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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 장재형목사(올리벳대학교)

누가복음 16장에 나타난 ‘불의한 청지기’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흔히 별개의 교훈으로 다뤄지곤 합니다. 하지만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는 이 두 비유가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거듭 역설합니다. 지상에서의 자원 관리라는 현실적 문제와 사후의 영원이라는 궁극적 세계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한한 오늘의 선택이 영원의 거처를 결정한다는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소유의 양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소유를 이웃에게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이며, 이것이 곧 자신이 속한 세계를 정의하게 됩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는 도덕적 완벽함이 아닌, 시간의 유한함을 깨달은 자의 종말론적 결단을 조명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현재의 자원을 활용해 미래의 관계를 준비합니다. 여기서 장재형 목사가 포착한 핵심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은 ‘소유’가 아닌 ‘위탁’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재물과 재능, 지식은 주인이 잠시 맡긴 도구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단순히 나의 안락을 위해 소모하고 있는지, 아니면 타인의 내일을 여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부유함 자체를 죄악시하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섭니다. 성경 속 아브라함이나 욥 역시 거부였으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문제는 부가 가져오는 ‘무감각의 환각’에 있습니다. 풍요로움이 주는 자기충족감은 타인의 고통에 귀를 닫게 만듭니다. 비유 속 부자의 죄는 폭정이 아니라 철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문 바로 앞에서 신음하는 나사로를 외면한 것이 그의 본질적인 죄였습니다. 신앙의 진정성은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 문턱에서 시험받는 법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부자’의 개념을 현대의 영적 자산으로까지 확장합니다. 성경을 마음껏 읽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안전한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부요함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풍성함은 때로 ‘거룩한 언어’ 뒤에 숨어 더 깊은 교만과 무관심을 낳기도 합니다. 아무리 깊은 신학적 논의를 즐겨도 문 앞의 나사로를 지나치며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영적 자산은 축복이 아닌 심판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역자들에게 “우리는 모두 부자”라고 말하는 것은 권위가 아닌 무거운 책임을 상기시키는 경고인 셈입니다.

사후 세계에서 일어난 두 사람의 역전은 지상에서의 삶이 이미 그 결과를 내포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현재의 찰나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영원의 축으로 이끄십니다. 오늘의 사소한 선택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인격으로 굳어져 결국 우리가 어느 나라에 속한 사람인지를 증명하게 됩니다. 뒤늦게 음부에서 나사로를 알아본 부자의 요청에 아브라함은 넘을 수 없는 구렁텅이를 언급합니다. 이는 회개의 기회가 영원하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사랑에는 분명한 타이밍이 있으며, 오늘 실천해야 할 선행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복음의 엄중함을 간과하는 일입니다.

또한 부자가 형제들을 위해 표적을 구했을 때 아브라함은 이미 우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고 답합니다. 이는 기록된 말씀의 충분성을 뜻합니다. 인간은 흔히 기적적인 체험을 갈망하며 불순종을 변명하지만, 장재형 목사는 신앙의 본질이 기적을 쫓는 눈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표적은 마음을 강제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진정한 회심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을 때 일어납니다. 혈통이나 종교적 이름표가 구원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삶으로 흘러나오는 열매만이 그 증거가 됩니다.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으로 번져 나가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경계해야 할 현상으로 ‘영적·물적 자산의 사유화’를 꼽습니다. 나눔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명이자 구조적 결단이어야 합니다. 특히 문서 사역이나 교육 지원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은 지식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영적 양식을 나누는 청지기 정신의 발현입니다. 한쪽의 풍요가 정체될 때 다른 쪽의 결핍이 발생하는 현상은 공동체 전체의 양심에 호소하는 거울이 됩니다.

비유 속에서 나사로가 원했던 것은 거창한 배려가 아니라 ‘부스러기’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작은 사랑조차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로 “가진 게 없다”는 핑계를 대는 것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냉수 한 그릇, 짧은 기도, 한 권의 책과 같은 작은 행위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는 더 크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또한 고통 속에서 혀를 적셔달라는 부자의 호소는 우리가 지상에서 언어의 청지기로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말을 했는지, 아니면 무관심과 조롱의 언어로 상처를 주었는지가 결국 우리의 영적 현주소를 말해줍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이 비유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수확의 풍요 뒤에 남겨진 이삭을 줍는 여인들의 구부정한 자세는 신앙의 본질이 겸손한 자세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더 가깝게 접하지만, 그만큼 감각은 마비되기 쉽습니다.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하늘의 시선’은 바로 이 무뎌진 감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자만이 땅의 신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은혜로 얻는 것이지만, 그 은혜를 진정으로 체험한 자는 반드시 타인을 향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우리 각자에게 “지금 당신의 문 앞에 있는 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영생은 죽음 이후의 입장권이 아니라 현재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입니다. 영원을 믿는 자는 오늘의 물질과 시간, 언어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창한 선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문을 열고 나사로를 발견하는 실천입니다. 내 안의 무관심을 깨우고 말씀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번역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지기들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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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장 – 장재형목사

요한복음 21장은 종종 본문에 덧붙여진 후일담처럼 오해되지만, 실상은 부활 신앙이 개인의 일상과 공동체의 방향을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결말부다. 이미 20장에서 기록 목적이 분명히 선언되었음에도 21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부활이 교리적 확증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 출발점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장재형(Olivet University 설립)목사는 이 장을 베드로 개인의 감정적 회복 이야기로 축소하지 않는다. 그는 요한복음 21장을 통해, 부활 이후 공동체가 어떤 기준을 따라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신앙의 나침반으로 읽는다. 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의 실패를 분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실패의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여시며, 그 길의 핵심을 “나를 따르라”는 한 문장으로 제시하신다. 이 때문에 요한복음 21장은 복음서의 마지막 장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서문처럼 기능한다.

갈릴리 바다에서 시작되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일상적이다. 성전도, 회당도, 군중이 모인 광장도 아니다. 밤새 반복되는 노동의 현장, 생계를 위한 자리에서 이야기는 다시 열린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그물과 배로 돌아간 모습은 믿음의 포기가 아니라, 방향을 잃은 영혼이 익숙한 언어로 몸을 옮긴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열심은 있으나 방향이 흐려진 상태’로 읽는다. 성실하지만 공허한 밤이다. 제자들은 밤새 애썼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종종 분별의 상실, 두려움, 인간 중심적 계산을 상징한다. 부활을 경험한 이후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어둠의 리듬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새벽, 빛이 번져 오는 시간에 예수는 해변에 서 계신다. 부활은 어둠을 부정하는 감상적 선언이 아니라, 어둠을 가로질러 실제로 아침을 여는 능력임을 이 대비는 선명하게 보여 준다.

예수의 첫마디는 “고기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는 추궁이 아니라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초대다. “없습니다.” 이 짧은 응답에는 좌절과 한계, 방향 상실이 모두 담겨 있다. 장재형목사는 신앙의 시작을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없는가’를 고백하는 데서 찾는다. 자기 확신이 무너질 때 비로소 말씀의 자리가 열린다. 이어지는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는 명령은 기술적 조언이 아니라, 순종의 방향을 바꾸라는 요청이다. 같은 바다, 같은 그물이지만, 말씀에 대한 반응이 달라질 때 결과의 차원이 달라진다. 그물은 찢어질 듯 차지만 찢어지지 않는다. 풍성함과 질서, 확장과 연합이 동시에 나타난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방향의 신학’으로 해석한다. 실패의 원인이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방향의 불일치일 수 있다는 통찰이다. 삶의 문제를 언제나 ‘더 열심히’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신앙을 소진시키지만, 예수의 말씀은 “어디를 향해 던질 것인가”를 묻게 한다. 신앙의 방향은 결국 관계의 방향이다. 누구의 음성을 기준으로 삼는가, 무엇을 성공이라 정의하는가가 삶의 궤도를 결정한다. 요한복음 21장의 기적은 물고기의 양을 늘린 사건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삶의 기준축을 자기 자신에게로 다시 맞추라고 요청하신 사건이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듯, 신앙은 노력의 누적이기 이전에 방향에 대한 순종이다.

이 기적은 사역의 시작과 끝을 잇는 상징적 반복이기도 하다. 예수는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물과 고기의 언어를 사용하셨고, 부활 이후에도 같은 언어로 그들을 다시 부르신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소명의 재점화라고 부른다. 부활은 과거를 지우는 힘이 아니라, 과거의 부르심을 더 깊은 사랑 위에서 다시 살려 내는 능력이다. 베드로에게 부활은 단순한 재도전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 새로운 출발이다. 같은 바다, 같은 배이지만, 이제는 말씀이 중심축이 된다.

153마리라는 구체적 숫자 또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기적을 모호한 감동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현실의 무게로 붙잡아 둔다. 부활 신앙은 추상적 열광이 아니라, 셀 수 있는 열매와 감당해야 할 책임을 동반한다. 풍성함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적 노동을 요구한다. 장재형목사가 은혜와 사명을 분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활의 능력은 개인을 고립시키지 않고 공동체의 몸으로 움직이게 한다.

사랑받는 제자가 “주님이시다”라고 말하는 순간도 중요하다. 결과가 주님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알아보는 눈이 결과의 의미를 바꾼다. 베드로가 바다로 뛰어드는 행동에는 열정과 함께 과거를 직면하려는 결단이 담겨 있다. 장재형목사는 부활을 ‘기억을 재배열하는 능력’으로 설명한다. 과거는 지워지지 않지만, 과거가 우리를 규정하는 방식은 바뀐다. 부활은 죄책의 사슬을 끊되, 책임의 길은 유지하신다.

숯불가 장면은 요한복음 18장의 기억을 불러낸다. 부인의 장소가 회복의 장소로 변한다. 예수는 실패를 삭제하지 않고, 실패의 자리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바꾸신다. “와서 먹으라.” 설교보다 먼저 식탁이 놓인다. 부활 공동체는 먼저 먹이고 돌본 뒤 사명을 맡는다. 장재형목사가 교회를 말할 때 돌봄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 번의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은 심문이 아니라 관계의 재정립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책임으로 번역된다.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리더십의 기준을 능력이나 성취가 아닌 사랑으로 재정의한다. 진실한 고백 위에 세워진 사명은 공동체를 살린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미래의 길도 암시하신다. 이는 제자도의 낭만을 걷어 내고 십자가의 현실을 보여 준다. 부활의 능력은 고난을 제거하는 힘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이다. “나를 따르라”는 명령은 과거를 책망하는 소리가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다.

비교의 유혹 앞에서 예수는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따르라.” 부활 공동체는 동일한 길을 복제하는 조직이 아니라, 다양한 부르심이 한 주님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몸이다. 요한복음 21장은 소문이 아닌 증언, 추측이 아닌 기록 위에 공동체를 세운다.

결국 이 장은 방향의 문제를 묻는다. 열심이 곧 순종은 아니다. 방향이 맞을 때 작은 순종은 큰 열매로 이어진다. 장재형목사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지금 나는 누구의 말씀을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이 질문에 응답할 때, 신앙은 자기증명에서 신뢰로 이동한다.

요한복음 21장은 부활의 능력이 오늘의 삶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 준다. 그 능력은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주고, 실패한 사랑을 회복시키며, 공동체를 사명으로 다시 세운다. 부활 이후의 삶은 되돌아감이 아니라 새 출발이다. 우리의 밤은 지나갔고, 새벽은 이미 밝았다. 해변에 서 계신 주님은 오늘도 묻고 부르신다.
“그물을 던지라.”
“내 양을 먹이라.”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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