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동행 –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와 동료들

이 글에서는 마가복음 14장 32-42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장면을 중점적으로 다루되, 장재형목사가 강조해 온 ‘그리스도와의 동행’이라는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과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그 고독한 기도를 통해 드러나는 신앙의 핵심 가치를 되새기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는 메시지와 함께 장재형목사가 전하고자 하는 주요 가르침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전개는 여러 소주제나 구분 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신 장면이 우리 각자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성찰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마가복음 14장에 기록된 겟세마네 기도 장면을 통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마친 후 감람산 기슭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고, 거기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한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감람산’은 올리브나무 숲이 가득하며, 그 가운데 ‘겟세마네’는 ‘채유소’, 즉 올리브 열매를 짜서 기름을 얻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장소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지점에서 올리브 기름이 가져다주는 두 가지 상징, 즉 평화와 영원성, 그리고 메시아에게 기름 부음을 주던 전통을 함께 묵상해 볼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히브리어로 ‘메시야’, 헬라어로 ‘크리스토스’라는 표현이 모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즉 기름 부음받은 왕으로서 겟세마네 동산에 계셨음에도, 여기서 제자들에게는 그분을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우는 장면이 아니라 오히려 땀을 핏방울처럼 흘리며 십자가 수난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왕으로 즉위하셔야 할 분이 극도로 비참한 기도를 드리시는 장면이기에, 성경 전체에서 매우 강렬하고도 역설적인 대조를 형성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마태·마가·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대단히 중요한 본문이지만, 요한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은 특징이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에 대해, 요한이 이미 13장부터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는 길을 완전히 수락하셨음을 조명했기에 겟세마네 기도 장면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자신이 ‘이제 영광을 받았다’고 선언하셨고, 제자들에게 종말론적 당부와 고별 설교를 남기셨습니다. 즉, 십자가 수난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당신은 스스로 그 길을 ‘영광’이라 선포하심으로 결단하셨다는 것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주님은 갈보리 언덕 이전부터 이미 그리스도의 길을 선택하셨다. 요한은 예수님의 내면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수용하는 왕적 위엄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겟세마네 기도를 생략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공관복음서가 기록한 겟세마네 기도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인간적 고민’과 ‘극렬한 통곡’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14장 33-3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은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라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참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셨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께 ‘아바 아버지’라 간구하며 끝까지 순종하신 고귀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장재형목사는 “예수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그분 안에는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처절한 길인지, 또 그 길을 가는 데 있어 인간적 떨림과 고통이 없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스스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시며,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복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장재형목사가 자주 강조해 왔듯, 예수님이 사실상 십자가를 지는 길을 ‘피할 수도 있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6장이나 마가복음 14장에 드러난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서 느끼는 극심한 두려움과 고통을 토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이어집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결단하고는 있지만, 종종 우리의 의지와 감정은 연약하기 때문에 다른 길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많다. 예수님 또한 그 순간을 겪으셨지만, 결국 아버지의 뜻을 붙들고 끝까지 걸어가심으로 우리 모두에게 본을 보여주셨다”고 풀이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모든 이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도전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진리입니다.

한편,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를 올리시는 동안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식사 자리에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예수님은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로 들어와서 기도하시는 동안에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들어 버립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에서 “주님께는 지금이 가장 절박한 시간이고, 일생일대의 영적 투쟁이 벌어지는 중인데, 제자들은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밤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처럼 무심하게 잠에 든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종종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엄중한 순간에 우리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버릴 때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예수님이 체포되시자 제자들은 허둥지둥 도망쳐 버리는데, 마가복음 14장 51-52절에는 베 홑이불을 두르고 따라오던 한 청년이 붙잡히자 홑이불을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전통적으로 이 ‘한 청년’을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자신의 집에서 최후의 만찬이 있었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감람산으로 나아가자, 밤중에 일단 잠들어 있던 마가가 뒤늦게 모든 상황을 감지하고 황급히 예수님을 따라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도 두려움 앞에 홑이불을 버리고 도망친다”라고 설명합니다. 마가는 이토록 부끄러운 장면을 자기 복음서에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기록함으로써, 인간적인 연약함이 얼마나 쉽게 드러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연약함조차도 결국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정직한 신앙고백’의 모범이라 칭하며, “마가는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임을 솔직히 고백하고, 그런 자신도 변화시키신 주님의 은혜를 자랑하기 위해 이 장면을 그대로 쓴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약점을 숨기기보다 오히려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이처럼 겟세마네 동산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셔야 마땅한 예수님께서 오히려 고통과 슬픔 속에 땀을 핏방울같이 흘리시는 비극적인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완전히 받아들여지기까지, 즉 예수가 진실로 ‘기름 부음받은 이’로 공인되고 고백되기까지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불가피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그분의 길을 함께 걸어갈 영적·신앙적 성숙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홀로 고독의 길을 가야 했고, 그 절정이 바로 겟세마네의 땀방울과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였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실에 대해,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도 떡과 포도주를 받고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나, 곧 이어서 펼쳐질 고난의 현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유월절에 희생된 양의 피가 기드론 시내로 흘러내려 붉게 물들어 있는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주님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선명히 알지 못했다. 주님은 홀로 그 붉은 물살을 건너 겟세마네로 들어가셨고, 이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고독하고 처절한 순간,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이는 아람어 ‘아바’(아빠)와 헬라어 ‘파테르’(아버지)가 결합된 표현으로,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맺고 계신 친밀하고도 절대적인 신뢰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에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 부르셨으나, 이 고통의 골짜기에서 그분은 더욱 간절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아빠 아버지여”라 부르며 부르짖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걸을 때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하는 의심이 생길 때다. 예수님조차 그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아바 아버지’를 찾으심으로, 인간적인 두려움의 순간에 우리도 전적으로 아버지를 신뢰해야 한다는 본을 보이셨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우리는 죽음의 세력이 가장 강력하게 덮쳐 올 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을 놓지 말아야 하며,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의 기도 안에 ‘수단’으로서의 기도가 아니라 ‘순종’을 낳는 기도로서의 본질이 구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간구하셨으나, 결국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결론지으셨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 장재형목사는 “우리는 종종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나를 바꾸도록’ 내어맡기는 태도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도의 정수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뜻과 감정을 초월해 아버지께 끝까지 복종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기도의 목표”라고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길을 따를 힘을 주는 근원적 모범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약함을 지닌 제자들은 이 기도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잠들었고, 야고보와 요한도 주님의 절박함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라고 말씀하시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권면하셨으나, 그들은 여전히 무감각한 상태였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들을 ‘교회 내의 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유하면서, “세상에서는 큰소리치고 대범해 보이는 신자도, 실상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잠들어 버리거나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고,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욱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하며, 베드로처럼 망령된 자신감을 내세우기보다, 예수님처럼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이후 예수님은 세 번째 기도 후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라고 하시며, 십자가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십니다. 그리고 군병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몰려오자 제자들은 흩어집니다. 이 대목에서 장재형목사는 “아무리 강한 결심과 의지를 보여도, 결국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넘어지기 쉽다. 베드로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제로는 가장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을 부인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가 넘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돌이키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곧 우리가 넘어지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지라도 주님께서 돌이킴의 은혜를 주신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됩니다.

결국,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인간적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죽음의 잔’을 아버지의 뜻에 복종함으로 수용하셨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신 현장이 바로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입니다. 장재형목사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방관자나 구경꾼의 위치로 남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와의 동행이며, 주님 안에 주어진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고 역설합니다. 즉, 겟세마네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순종의 길을 우리 또한 믿음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고독하고 비극적으로 보일지라도, 부활의 영광이 그 끝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한편, 요한복음이 겟세마네 기도를 생략한 것에 대해 장재형목사는 “요한복음 13장에서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영광으로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의 인간적 고뇌 부분을 생략하는 편집 의도를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다시 한 번 짚어 줍니다. 요한복음은 17장의 고별 기도를 통해 세상과 제자들을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왕적’ 위엄을 더욱 부각합니다. 반면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고통을 당하셨고,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셨는가에 포커스를 둡니다. 이 둘은 결코 모순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과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더 풍부하게 보여주는 보완적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신앙의 길을 걷는 우리도 종종 겟세마네 같은 어려움을 맞이한다. 세상에서 기드론 시내처럼 붉은 피의 흔적을 보며 때로 두렵고 떨리기도 하고, 아무도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 외롭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길을 이미 가셨고, 우리에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의 본을 남겨주셨다. 우리가 그 기도를 자신의 것으로 삼을 때, 주님과 동행하는 길은 분명히 고독을 넘어 부활의 환희로 이어진다”고 가르칩니다. 이처럼 겟세마네와 갈보리 언덕은 고통이 극심하게 드러나는 곳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는 자리라는 진리가 우리에게 제시됩니다.

더 나아가, 겟세마네 사건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하는 ‘영적 거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제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며, 어쩌면 마가처럼 겨우 홑이불만 두른 채 뛰어갔다가 결국 도망치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장재형목사는 인간적인 결심과 맹세가 얼마나 한계가 뚜렷한지를 지적하면서, “베드로처럼 어떠한 어려움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큰소리쳐도, 하나님 앞에 깨어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작은 자극 하나에도 무너지고 만다. 그러므로 신앙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과 기도를 통해서만 단단해진다”고 합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열심보다 내면의 겸손과 믿음이 훨씬 더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14장 후반부에 보면, 예수님이 실제로 체포되시고 대제사장들 앞에서 신문받으시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베드로는 정확히 예수님의 예언대로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맙니다. 닭이 울자마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죠. 장재형목사는 이 지점에서 인간적인 비참함과 눈물을 지적하면서, “우리는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베드로를 찾아가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회복시켜 주셨다. 이는 겟세마네 기도에서 십자가를 선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죄인인 우리를 얼마나 끝까지 붙드시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든다”고 설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그리스도와의 동행’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며, 때로는 고독하고 외롭고 눈물겨운 길임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길을 주님이 먼저 가셨기에, 그리고 그 길에서 제자들의 모든 실패까지도 주님이 포용하셨기에, 우리가 실패한다 할지라도 다시금 회복될 수 있는 길이라는 희망이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바로 이 ‘부활의 희망으로 이끌어가는 고난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겟세마네와 같은 어둠과 슬픔, 홀로 씨름해야 할 시험을 맞닥뜨릴 수 있으나, 기도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 또한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겟세마네의 기도 장면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핵심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첫째, 예수님도 인간적인 두려움과 고통을 겪으셨고, 우리 역시 그러한 시험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 그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를 부르짖으셨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셋째,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라는 복종은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를 위해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넷째, 제자들처럼 잠에 빠지거나 도망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도 솔직히 인정해야 하며, 그 연약함 속에 임하는 주님의 은혜로 인해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결국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점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십자가는 인간적인 최악의 절망이지만, 부활이라는 최후의 소망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며, 그 길에서 우리의 믿음은 성숙해집니다.

이처럼 겟세마네와 갈보리는 단순히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영적 현실을 비추어 줍니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실에 주목하며, “우리는 너무 쉽게 제자들을 비난하지만, 사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라고 물어봐야 한다. 그 질문을 통해 자기 자신도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날 잠재력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 훨씬 더 큰 겸손과 회개의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신앙은 ‘내가 강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끝까지 붙들어 주시고, 우리가 연약함을 인정하며 은혜를 구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나아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각종 위기와 유혹을 만날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처럼 그저 의지로 버티다가 결국 도망치거나 무너져 버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처럼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토로하며 “아버지의 원대로 되길 원합니다”라는 고백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 후자의 길이, 장재형목사가 끊임없이 설파해 온 ‘그리스도와의 동행’의 실질적 모습입니다. 주님이 겟세마네에서 먼저 그 길을 가셨고, 부활하심으로써 그 길이 결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를 때, 비록 인간적인 약함과 눈물이 따른다 해도, 마지막에는 부활의 능력이 펼쳐지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맛보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 우리는 ‘기도’의 역할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왜 예수님은 가장 힘겨운 순간에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의 자리에 가셨고, 그들이 함께 깨어 기도하기를 원하셨을까요? 장재형목사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 마음의 항복을 이끌어낸다. 기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교만의 표현일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코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제자들도 깨어 기도하기를 원하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이 체포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동안 어떤 의미 있는 역할도 하지 못하고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 후에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기도의 자리’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복음 전파 사명을 맡기십니다. 결국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초대교회 부흥을 일으키는 주역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정적이고 결단력 있어 보인다 해도, 기도를 잃어버리면 베드로와 같이 작은 유혹 앞에서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의 주님처럼 눈물과 통곡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어떤 시험도 결국 극복될 수 있습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점에서 “교회가 이 땅에서 설 자리를 잃고, 개인의 신앙이 깊은 내면적 능력을 잃어버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정한 의미의 겟세마네 기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겟세마네 기도는 간절함과 절실함,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 순종을 담고 있는데, 이를 놓치면 우리도 잠자고,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순절 기간이나 특별 새벽기도회 등 특정 절기에만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서 늘 겟세마네를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피할 수 없는 결단을 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는 영적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거룩한 반복’이라 부릅니다. 즉, 역사 속에서 단 한 번 있었던 겟세마네의 이야기가 오늘도 우리 안에서 반복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가처럼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끝내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서의 저자로 세워지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세 번씩 주님을 부인했다 해도, 다시금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부여받고 장차 교회 기둥으로 쓰임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렇듯, 마가복음에 기록된 겟세마네 기도 장면은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가장 강렬한 예시이자, 제자들의 연약함과 예수님의 인자하심이 극명히 대비되는 자리입니다. 장재형목사가 말하는 ‘그리스도와의 동행’은 결국 이 겟세마네 영성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리 무서운 죽음이 다가온다 해도, 아바 아버지를 향한 절대 신뢰와 사랑을 가지고, “내 원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외롭고 고독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그 길을 먼저 가셨고, 그 길이 영원한 승리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부활 사건을 통해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과제입니다.

이러한 겟세마네 사건을 정리하며, 장재형목사는 우리 각자가 ‘내가 피하고 싶은 십자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라고 조언합니다. “혹은 내가 잠들어 버리고 있는 고난은 무엇이며,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매달려야 할 일은 무엇인가? 또 나는 지금 베드로처럼 ‘주를 위해 목숨도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실상은 쉬지 못할 잠에 빠져 있거나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들이 우리 마음속에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진실하게 답해볼 때,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한층 더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더 이상 인간적인 힘이나 의지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능력에 온전히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장재형목사는 늘 “신앙은 나의 결단 위에 서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과 예수님이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순종 위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순종에 발붙여, 우리 역시 삶의 크고 작은 겟세마네를 만나게 될 때마다 “아바 아버지”를 부르짖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신뢰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고백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동행’이라는 영적 현실을 우리 일상에서 구체화시키는 열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신앙 행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밤중에 흘리는 눈물과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이미 선언하신 구원과 생명의 능력을 우리 삶에 실제로 펼쳐 보이십니다.

이처럼, 겟세마네 동산에 담긴 예수님의 기도와 제자들의 연약함, 그리고 결국 십자가의 길을 향해 굳게 일어나신 예수님의 순종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금 상기하게 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주님은 홀로 그 길을 가셨다. 제자들은 자고 있었고, 누군가는 도망쳤으며, 다른 누군가는 배신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길은 본래부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한 치의 후퇴 없이 그 길을 가셨고, 그 길의 종착지는 부활이라는 승리였다”고 말합니다. 이 메시지는 예나 지금이나 제자도로 초청받은 모든 이에게 변함없이 유효하며, 우리 각자를 향해 ‘함께 가자’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초청입니다.

정리하자면, 장재형목사가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강조하는 ‘그리스도와의 동행’은 다음과 같은 함의를 지닙니다. 첫째, 우리의 약함을 솔직히 인정하되, 그 약함을 안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이 우리 의지와 다를 때에도, 나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이 더 선하고 옳음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어떤 강한 결심과 맹세도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넷째, 비록 내가 실패한다 해도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에도 제자를 버리지 않으셨듯, 우리 역시 다시 일으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부활의 영광을 내포하는 역설적 상징이기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 고난에만 매몰되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갈 때 그 영광을 맛보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결국 겟세마네 기도를 묵상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내 인생에서 지금 겪고 있는 혼돈과 시련이 어떤 의미인가? 그 안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하게 만듭니다. 주님은 그 끝에 분명한 답을 주십니다. 내가 부담스러워하고 피하고 싶은 십자가가 있다면, 그 십자가 너머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영광과 부활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동행’의 절정이며, 장재형목사가 거듭거듭 전해 온 복음의 실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겟세마네에서 통곡하던 예수님을 향해 비로소 깨어 일어나 함께 걸어가는 결단입니다. 이제 더는 자고 있지 말고, 또 도망가지 말고, 주님과 함께 가는 진정한 동행자로 서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내용을 하나로 요약하면, 겟세마네의 기도는 예수님이 가지신 인간적 약함과 신적 순종의 역설을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기도’로 나아가야 함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겟세마네 영성의 중요성을 수없이 설파해 왔으며, 그 핵심은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과 동행하려면 우리도 겟세마네의 통곡을 치러야 하고, 십자가를 감당해야 하며, 끝내 그 길이 영광으로 가는 길임을 믿어야 한다”라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깨어 기도하며 겟세마네를 다시금 내 삶의 현장에 구현할 때,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동행이야말로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된 길이 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록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도,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시고도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의 실패와 눈물도 마침내는 주님의 부활 능력 안에서 회복되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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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向怀抱万民的祷告之殿 –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在被称为“光与暗的魔术师”的荷兰大师伦勃朗生命最后的作品《浪子回头》面前,几乎每个人都会肃然起敬,停下脚步。那个穿着破碎衣衫、脚踏磨损鞋履、俯伏在地的儿子;还有那位等候到双眼几近哭伤,终于用颤抖双手拥抱儿子弯曲脊背的年老父亲。流淌在这幅画布上的深沉静默与无限包容,跨越时代,默默见证着我们终究应当归回的属灵故乡,究竟应有怎样的模样。儿子黑暗的过去、无法洗净的罪恶、惨痛的失败,都在那温暖的怀抱中悄然融化。这样神圣而令人心潮澎湃的安息之所,正是今日教会必须恢复的本质,也是那向受伤人类敞开的真正圣殿应有的模样。

受伤灵魂停驻的画布,浪子的怀抱
在现代社会炫目的霓虹灯与冰冷的钢铁丛林背后,依然有无数迷失、徘徊的灵魂存在。对于这些人而言,教会是否真的像伦勃朗名画中父亲的怀抱一样,能提供无条件的安息呢?张大卫牧师深切强调,教会不应只是一个重复宗教仪式的封闭空间,而应成为无论出身、地位、过去的过犯如何,人人都可以前来洗净罪污、得着新生命的神圣恩典之所。在他的讲道中,以赛亚先知那句“我的殿必称为万民祷告的殿”的呼声,带着强烈的感召力不断回响。教会必须不断恢复为一个毫无条件拥抱所有人的伟大包容之地,而这正是十字架所彰显之爱的原型。

圣洁愤怒所拆毁的墙,重新立起的祭坛
我们仍清楚记得圣经中发生在耶路撒冷圣殿里的那一幕:耶稣发出圣洁的愤怒。那座因贪婪与自私而被玷污、沦为贼窝的圣殿,被祂推翻洁净的场景,并非单纯情绪性的愤怒,而是出于恢复失落福音纯洁性的崇高之爱。张大卫牧师将这场洁净圣殿的事件,视为真正教会改革永恒的典范。正如宗教改革者带着泣血之心高声疾呼那样,教会不能安于僵化的制度或少数既得利益者的安逸之中,而应借着深刻的圣经默想与迫切的祷告,不断更新自己。真正的神学洞见,并不在华丽的建筑或复杂的教义之中,而是在祭坛前屈膝流泪的圣徒那真实祷告里,才得以最终成全。

遮蔽穹苍的谦卑,拆除界限的所罗门祈求
圣殿真正的意义,在所罗门的奉献祷告中更加庄严地绽放。圣殿建成之后,所罗门并没有夸耀自己的伟大功绩,反而俯伏在连广阔穹苍都无法容纳的创造主面前,痛切承认人的有限。张大卫牧师强调,这样谦卑的态度,正是建造教会过程中绝不可失去的属灵资产。更令人惊叹的是,这祷告的视线并未停留在以色列狭窄的血缘疆界之内,而是远远地投向外邦人。所罗门祈求说,即便是陌生的外邦人,只要向着这殿呼求,愿神也垂听他们的祷告——这本身就是对无条件救恩的宣告。张大卫牧师在此再次强烈指出,教会在这个时代肩负着明确的使命,就是要向外邦人和世上一切被边缘化的人,将门槛降到最低。

在旧砖之上绽放的青年赞美,以马内利的气息
请想象这样一个场景:在一座经受漫长岁月风雨的古老礼拜堂斑驳的砖墙之间,有一天忽然响起青年人火热的赞美之声。那是古老传统所承载的神圣厚重,与年轻一代充满活力的属灵热情交汇的时刻。在康涅狄格以马内利礼拜堂的献堂礼上,张大卫牧师曾动情地告白,当他听见曾经作为天主教神父房间使用的地方传出青年人的赞美声时,不禁流下感动的泪水。那是断裂的历史重新连结,不同传统中的人们在同一位神里面合而为一的恩典时刻。

归根到底,真正应当成为活生生祷告之殿的,不是肉眼可见的建筑,而是我们自己的生命。张大卫牧师所呈现的终极异象十分清晰:怀抱着“以马内利”——神与我们同在——这一坚定不移的应许,在心中存记,并且作为黑暗世界中的光,用生命去证明那荣耀。今日的教会,唯有像伦勃朗画中那位几乎失明的父亲一样,张开双臂拥抱世界,这片土地上那永不干涸的生命之河,才会再次流淌起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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万民を包み込む祈りの家へ – 張ダビデ 牧師 (Olivet University)

光と闇の魔術師と呼ばれるオランダの巨匠レンブラントの生涯最後の作品『放蕩息子の帰還』の前に立つと、誰もが粛然とし、思わず足を止めます。引き裂かれた服と擦り切れた靴を身にまとい、床にひれ伏す息子。そして、目がつぶれるほどに彼を待ち続け、ついに震える両手で息子の曲がった背を抱きしめる老いた父。そのキャンバスに流れる深い沈黙と無限の包容は、時代を超えて、私たちが帰るべき霊的な故郷がいったいどのような姿であるべきかを静かに証ししています。息子の暗い過去、洗い流すことのできない罪、惨めな失敗は、その温かな懐の中ですべて溶かされていきます。この聖く胸を打つ安息の場こそ、今日の教会が回復すべき本質であり、傷ついた人類に向かって大きく開かれ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真の神殿の姿なのです。

傷ついた魂が憩うキャンバス、放蕩息子の懐

現代社会の華やかなネオンサインと冷たい高層ビルの森の背後には、なおも道を失い、さまよう無数の魂が存在しています。そうした人々にとって、教会は果たしてレンブラントの名画に描かれた父の懐のように、無条件の安息を与えているでしょうか。張ダビデ牧師は、教会が単に宗教的儀式を繰り返す閉ざされた空間を超えて、出身や地位、過去の過ちにかかわらず、誰もが進み出て罪を洗われ、新しいいのちを得ることのできる聖なる恵みの場と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深く力説します。その説教には、「わたしの家は、すべての民の祈りの家と呼ばれる」というイザヤ預言者の叫びが、強い訴えとして染み込んでいます。教会は、無条件にすべての人を包み込む偉大な包容の場へと絶えず回復されるべきであり、それこそが十字架が示した愛の原型なのだというのです。

聖なる怒りが打ち砕いた壁、再び築かれる祭壇

私たちは、聖書に記されたエルサレム神殿でのイエスの聖なる怒りを鮮やかに覚えています。貪欲と利己心によって強盗の巣へと成り果てた神殿を覆されたあの場面は、単なる感情的な怒りではなく、失われた福音の純粋さを取り戻そうとする崇高な愛の発露でした。張ダビデ牧師は、この神殿浄化の出来事を、真の教会改革の永遠のモデルとして提示します。宗教改革者たちが血を吐く思いで叫んだように、教会は硬直した制度や一部の既得権に安住するのではなく、深い聖書黙想と切なる祈りを通して、絶えず自らを新た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真の神学的洞察は、華麗な建築物や複雑な教理の中にあるのではなく、祭壇の前にひざまずき、涙を流す信徒たちの真実な祈りの中で、はじめて完成されるのです。

天を覆うへりくだり、境界を取り払うソロモンの願い

このような神殿の真の意味は、ソロモンの奉献の祈りにおいてさらに荘厳に花開きます。神殿を完成させた後、ソロモンは自らの偉業を誇るのではなく、広大な天さえ包みきれない創造主の前にひれ伏し、人間の有限さを切実に告白しました。張ダビデ牧師は、このへりくだった姿勢こそ、教会を建て上げる過程で決して失ってはならない霊的資産であると強調します。驚くべきことに、この祈りのまなざしは、イスラエルという狭い血統の垣根を越えて、遠く異邦人へと向けられています。見知らぬ異邦人であっても神殿に向かって叫ぶなら、そ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いというソロモンの願いは、まさに無条件の救いの宣言です。張ダビデ牧師はこの箇所において、異邦人と世の疎外された人々に向かって敷居を限りなく低く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教会の時代的使命を改めて強く訴えます。

古びたれんがの上に咲く青年たちの賛美、インマヌエルの息吹

長い歳月の風雪に耐えてきた趣ある礼拝堂の古びたれんがの間から、ある日、若者たちの熱い賛美の声が響き渡る光景を想像してみてください。長い伝統がもたらす聖なる重みと、若い世代の躍動する霊的活力が美しく交差する瞬間です。コネチカットのインマヌエル・チャペルの献堂礼拝の際、張ダビデ牧師は、かつてカトリック司祭室として使われていた部屋から若者たちの賛美が響いてくるのを聞き、深い感動の涙を流したと語っています。それは、断絶していた歴史が一つにつながり、異なる伝統の中にいた人々が一人の神のうちに結ばれる恵みの瞬間でした。

結局のところ、目に見える建物ではなく、私たちの人生そのものが生きて息づく祈りの家と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張ダビデ牧師が示す究極のビジョンは明確です。神が私たちと共におられるという「インマヌエル」の確かな約束を胸に抱き、暗い世界の光として、その栄光を自らの生き方によって証しすることです。今日の教会が、レンブラントの絵に描かれた盲いた父のように両腕を大きく広げて世界を抱きしめるとき、はじめてこの地に、涸れることのないいのちの水の川が再び流れ始めるでしょう。

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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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ia una casa de oración que abrace a todas las naciones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Ante la última obra de la vida del gran maestro neerlandés Rembrandt, conocido como el mago de la luz y la oscuridad, El regreso del hijo pródigo, cualquiera se detiene sobrecogido y en silencio. El hijo postrado en el suelo con la ropa desgarrada y los zapatos gastados, y el anciano padre que, después de esperarlo hasta que sus ojos casi se consumen, finalmente envuelve con sus manos temblorosas la espalda encorvada de su hijo. El denso silencio y la infinita acogida que fluyen sobre este lienzo testimonian, más allá del tiempo, cómo debería ser en verdad ese hogar espiritual al que estamos llamados a volver. El oscuro pasado del hijo, sus pecados imborrables y su fracaso desgarrador se derriten por completo en ese abrazo cálido. Precisamente este refugio santo y conmovedor es la esencia que la Iglesia de hoy debe recuperar, y la imagen del verdadero templo que debe permanecer ampliamente abierto hacia la humanidad herida.

El lienzo donde reposan las almas heridas, el abrazo del hijo pródigo
Detrás de los brillantes letreros de neón y de los fríos bosques de edificios de la sociedad moderna, todavía existen innumerables almas que han perdido el rumbo y vagan sin descanso. Para ellas, ¿está siendo la Iglesia un lugar de descanso incondicional, como el abrazo del padre en la obra maestra de Rembrandt? El pastor David Jang insiste profundamente en que la Iglesia debe ir más allá de ser un espacio cerrado donde simplemente se repiten rituales religiosos, para convertirse en un lugar santo de gracia donde cualquiera, sin importar su origen, su posición social o sus faltas del pasado, pueda acercarse, ser lavado de su pecado y recibir una nueva vida. En sus sermones resuena con intensa fuerza el clamor del profeta Isaías: “Mi casa será llamada casa de oración para todos los pueblos”. La Iglesia debe ser restaurada continuamente como un lugar de gran acogida que abrace a todos sin condición alguna, y eso, afirma, es precisamente la forma original del amor revelado en la cruz.

La ira santa que derribó muros, el altar que se vuelve a levantar
Recordamos con viveza la ira santa de Jesús en el templo de Jerusalén. Aquella escena en la que volcó el templo, manchado por la codicia y el egoísmo hasta convertirse en una cueva de ladrones, no fue una simple explosión de enojo emocional, sino una expresión sublime de amor que buscaba recuperar la pureza perdida del evangelio. El pastor David Jang presenta este acontecimiento de purificación del templo como un modelo eterno de la verdadera reforma de la Iglesia. Tal como clamaron los reformadores con el corazón desgarrado, la Iglesia no debe acomodarse en instituciones endurecidas ni en los privilegios de unos pocos, sino renovarse sin cesar a sí misma mediante una meditación profunda de la Escritura y una oración ferviente. La verdadera visión teológica no se completa en edificios espléndidos ni en doctrinas complicadas, sino en la oración sincera de los creyentes que se arrodillan ante el altar y derraman lágrimas.

La humildad que cubre los cielos, la súplica de Salomón que derriba fronteras
El verdadero significado del templo florece con aún mayor majestuosidad en la oración de dedicación de Salomón. Después de completar el templo, Salomón no se jactó de su gran logro; más bien, se postró ante el Creador, a quien ni siquiera los vastos cielos pueden contener, y confesó con crudeza la finitud humana.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que esta actitud humilde es precisamente el tesoro espiritual que nunca debe perderse en el proceso de edificar la Iglesia. Lo asombroso es que la mirada de esta oración va más allá del estrecho cerco étnico de Israel y se dirige hacia los extranjeros que están lejos. La súplica de Salomón, pidiendo que aun el extranjero que clame hacia el templo sea escuchado, es en sí misma una proclamación de salvación sin condiciones. En este pasaje, el pastor David Jang vuelve a enfatizar con fuerza la misión histórica de la Iglesia: rebajar sin límite su umbral hacia los gentiles y hacia los marginados del mundo.

El canto de los jóvenes que florece sobre ladrillos antiguos, el aliento de Emanuel
Imagine por un momento que, entre los ladrillos envejecidos de una capilla antigua que ha soportado el paso del tiempo, resuena un día el ferviente canto de alabanza de jóvenes. Es el momento en que el peso sagrado de una larga tradición y la vitalidad espiritual dinámica de una nueva generación se cruzan con belleza. Durante el culto de dedicación de la Capilla Emanuel en Connecticut, el pastor David Jang confesó que derramó lágrimas de profunda emoción al escuchar las alabanzas de los jóvenes resonando en una sala que en el pasado había sido utilizada como habitación de sacerdotes católicos. Fue un momento de gracia en el que una historia fragmentada volvía a unirse, y personas de distintas tradiciones se congregaban en un solo Dios.

Al final, no debe ser el edificio visible, sino nuestra propia vida, la que llegue a convertirse en una casa de oración viva y palpitante. La visión última que presenta el pastor David Jang es clara. Consiste en llevar en el corazón la firme promesa de “Emanuel”, que significa que Dios está con nosotros, y demostrar con la vida misma Su gloria como luz en medio de un mundo oscuro. Cuando la Iglesia de hoy abra sus brazos para abrazar al mundo, como el padre casi ciego en la pintura de Rembrandt, entonces comenzará a correr nuevamente sobre esta tierra un río de agua viva que nunca se secar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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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 une maison de prière qui embrasse toutes les nations – Pasteu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Devant Le Retour du fils prodigue, dernière œuvre du grand maître néerlandais Rembrandt, souvent appelé le magicien de la lumière et de l’ombre, chacun s’arrête en silence, comme saisi de recueillement. Il y a ce fils, jeté à terre, vêtu de haillons et chaussé de souliers usés jusqu’à la corde ; puis ce vieux père, qui l’a attendu jusqu’à s’en meurtrir les yeux, et qui enfin entoure de ses mains tremblantes le dos courbé de son enfant. Le silence profond et l’accueil infini qui traversent cette toile témoignent, au-delà des siècles, de ce que devrait être la véritable patrie spirituelle vers laquelle nous devons revenir. Le passé obscur du fils, ses péchés ineffaçables, son échec accablant, tout se dissout dans cette étreinte chaleureuse. Un tel refuge, saint et bouleversant, voilà précisément l’essence que l’Église d’aujourd’hui doit retrouver, et l’image du vrai Temple qui devrait rester grand ouvert pour l’humanité blessée.

La toile où repose l’âme blessée, les bras du fils prodigue

Derrière les néons éclatants et les forêts de béton glacé de la société moderne, d’innombrables âmes continuent d’errer, perdues et sans repos. L’Église offre-t-elle vraiment à ces êtres un refuge inconditionnel, semblable aux bras du père dans le chef-d’œuvre de Rembrandt ?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avec force que l’Église ne doit pas être un lieu fermé, limité à la répétition de rites religieux, mais un espace saint de grâce où chacun, sans distinction d’origine, de statut social ou de passé, peut venir laver ses fautes et recevoir une vie nouvelle. Dans sa prédication résonne avec une intensité particulière le cri du prophète Ésaïe : « Ma maison sera appelée une maison de prière pour tous les peuples. » L’Église doit sans cesse être restaurée comme un lieu d’accueil immense, capable d’embrasser tous les hommes sans condition ; telle est, selon lui, la forme même de l’amour révélé par la croix.

La sainte colère qui abattit les murs, l’autel relevé

Nous nous souvenons avec force de la sainte colère de Jésus dans le Temple de Jérusalem. Lorsqu’il renversa ce sanctuaire souillé par l’avidité et l’égoïsme, devenu une caverne de brigands, il ne s’agissait pas d’un simple accès d’émotion, mais d’un acte né d’un amour noble, désireux de restaurer la pureté perdue de l’Évangile. Le pasteur David Jang présente cet épisode de la purification du Temple comme un modèle éternel de la véritable réforme de l’Église. Comme les réformateurs qui criaient presque en versant leur sang, l’Église ne doit pas se contenter d’institutions figées ni se reposer sur les privilèges de quelques-uns ; elle doit sans cesse se renouveler par une méditation profonde des Écritures et par une prière ardente. La vraie intuition théologique ne s’accomplit ni dans l’éclat des édifices, ni dans la complexité des doctrines, mais dans la prière sincère des croyants agenouillés devant l’autel, les yeux baignés de larmes.

L’humilité qui couvre les cieux, la prière de Salomon qui abolit les frontières

Le véritable sens du Temple apparaît avec encore plus de majesté dans la prière de dédicace de Salomon. Après l’achèvement du sanctuaire, Salomon ne se glorifia pas de sa grande œuvre ; au contraire, il se prosterna devant le Créateur, que même les cieux immenses ne peuvent contenir, confessant avec intensité la finitude humaine.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sur le fait que cette attitude d’humilité est un trésor spirituel que l’Église ne doit jamais perdre au cours de son édification. Ce qui frappe davantage encore, c’est que le regard de cette prière dépasse l’étroite clôture ethnique d’Israël pour se tourner vers les nations lointaines. La supplication de Salomon — demandant que Dieu écoute même l’étranger qui crie vers Lui en direction du Temple — est déjà une proclamation d’un salut offert sans condition. À ce point précis, David Jang réaffirme avec vigueur la mission historique de l’Église : abaisser sans cesse son seuil pour les païens et pour tous ceux que le monde relègue à la marge.

Le chant des jeunes qui s’élève sur les vieilles pierres, le souffle d’Emmanuel

Imaginez un ancien sanctuaire, patiné par les années, dont les briques vieillies résonneraient soudain du chant fervent de jeunes croyants. C’est l’instant où la gravité sacrée de la tradition rencontre la vitalité spirituelle d’une nouvelle génération. Lors du culte de dédicace de la chapelle Emmanuel du Connecticut, le pasteur David Jang a confié avoir versé des larmes d’émotion en entendant des chants de louange s’élever d’une pièce autrefois utilisée comme salle de prêtres catholiques. Ce fut un moment de grâce où une histoire fragmentée se trouvait réunifiée, et où des hommes issus de traditions différentes s’unissaient en un seul Dieu.

En définitive, ce n’est pas seulement le bâtiment visible qui doit être une maison de prière, mais notre vie elle-même, vivante et habitée par le souffle de Dieu. La vision ultime proposée par le pasteur David Jang est claire : porter dans notre cœur la promesse inébranlable d’« Emmanuel », Dieu avec nous, et manifester sa gloire par notre vie en tant que lumière dans un monde obscurci. Lorsque l’Église d’aujourd’hui ouvrira enfin ses bras au monde, à l’image du père presque aveugle dans la peinture de Rembrandt, alors le fleuve de l’eau vive recommencera à couler sur cette terre, sans jamais se tar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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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ard a House of Prayer That Embraces All Nations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or David Jang

Before Rembrandt’s final masterpiece,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painted by the Dutch master often called the magician of light and darkness, anyone is compelled to fall silent and stop in reverence. There is the son, collapsed on the ground in torn clothes and worn-out shoes, and there is the aged father, whose eyes seem to have been worn raw by long waiting, now finally wrapping his trembling hands around the bent back of his child. The deep silence and infinite embrace flowing through this canvas bear quiet witness, across the ages, to what kind of spiritual home we are meant to return to. The son’s dark past, his unforgivable sins, and his devastating failures all melt away within that warm embrace. This holy and deeply moving refuge is precisely the essence the church today must recover, and it is the true image of the sanctuary that should stand wide open before wounded humanity.

A Canvas for Wounded Souls, the Embrace of the Prodigal

Behind the dazzling neon signs and cold forests of concrete in modern society, there are still countless souls wandering in confusion and loss. Does the church truly offer them unconditional rest, like the father’s embrace in Rembrandt’s masterpiece? Pastor David Jang earnestly emphasizes that the church must become more than a closed space where religious rituals are merely repeated. It must be a holy place of grace where anyone, regardless of background, status, or past failures, may come, be cleansed of sin, and receive new life. In his preaching, the cry of the prophet Isaiah, “My house sha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 resounds with deep urgency. The church must continually be restored as a place of radical embrace that welcomes all people without condition, for this is the very pattern of love revealed by the cross.

The Barrier Torn Down by Holy Anger, the Altar Raised Again

We vividly remember Jesus’ holy anger in the temple of Jerusalem. When He overturned the temple that had been stained by greed and selfishness and reduced to a den of robbers, it was not a mere outburst of emotion. It was the expression of a noble love seeking to restore the lost purity of the gospel. Pastor David Jang presents this cleansing of the temple as the eternal model of true church reform. Just as the Reformers cried out with agonized hearts, the church must not settle into hardened institutions or the privileges of a few. Rather, it must continually renew itself through deep meditation on Scripture and earnest prayer. True theological insight is not completed through splendid architecture or intricate doctrinal systems, but through the sincere prayers of believers who kneel before the altar with tears in their eyes.

Humility That Covers the Heavens, Solomon’s Prayer That Breaks Boundaries

The true meaning of the temple shines even more majestically in Solomon’s prayer of dedication. After completing the temple, Solomon did not boast of his great achievement. Instead, he fell before the Creator, whom even the vast heavens cannot contain, and confessed with painful honesty the finitude of humanity. Pastor David Jang stresses that this posture of humility is a spiritual treasure the church must never lose in the process of being built up. What is striking is that the gaze of this prayer extends beyond the narrow boundary of Israel’s bloodline toward the distant foreigner. Solomon’s plea that even a stranger from another nation, if he cries out toward the temple, might have his prayer heard, is nothing less than a proclamation of unconditional salvation. At this point, Pastor David Jang once again underscores the church’s calling in this age: it must lower its threshold without limit for Gentiles and for those marginalized by the world.

Youthful Praise Blooming Upon Old Bricks, the Breath of Immanuel

Imagine, for a moment, the sound of fervent praise from young people echoing through the worn bricks of a stately old chapel that has endured the storms of many years. It is a beautiful moment in which the sacred weight of ancient tradition and the dynamic spiritual vitality of a younger generation meet together. At the dedication service of Connecticut Immanuel Chapel, Pastor David Jang confessed that he was moved to tears when he heard the praises of young people rising from a room that had once served as a Catholic priests’ chamber. It was a moment of grace in which broken history was joined together and people from different traditions were united in one God.

In the end, it is not the visible building but our very lives that must become a living, breathing house of prayer. The ultimate vision Pastor David Jang presents is clear: to hold fast in our hearts the firm promise of “Immanuel,” that God is with us, and to prove His glory through our lives as light in a dark world. When the church of today opens its arms wide to embrace the world like the blind father in Rembrandt’s painting, then at last the river of living water that never runs dry will begin to flow across this land onc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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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을 품는 기도의 집을 향하여 – 장재형 목사 (Olivet University)

빛과 어둠의 마술사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의 생애 마지막 작품, ‘돌아온 탕자’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지며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찢겨진 옷과 닳아빠진 신발을 신고 바닥에 엎드린 아들, 그리고 눈이 짓무르도록 그를 기다리다 마침내 떨리는 두 손으로 아들의 굽은 등을 감싸 안는 늙은 아버지. 이 캔버스 위에 흐르는 짙은 침묵과 무한한 포용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적인 고향이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묵묵히 증언합니다. 아들의 어두운 과거, 씻을 수 없는 죄악, 참담한 실패는 그 따뜻한 품 안에서 모두 녹아내립니다. 이 거룩하고도 가슴 벅찬 안식처야말로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이며, 상처 입은 인류를 향해 활짝 열려 있어야 할 참된 성전의 모습일 것입니다.

상처 입은 영혼이 머무는 캔버스, 탕자의 품

현대 사회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차가운 빌딩 숲 뒤에는 여전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에게 교회는 과연 렘브란트의 명화 속 아버지의 품처럼 조건 없는 안식을 제공하고 있을까요? 장재형 목사는 교회가 단순히 종교적 의식을 반복하는 닫힌 공간을 넘어, 출신과 지위, 과거의 허물과 관계없이 누구나 나아와 죄를 씻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거룩한 은혜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깊이 역설합니다. 그의 설교 속에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이 짙은 호소력으로 녹아 있습니다. 교회는 조건 없이 모든 사람을 품어내는 위대한 포용성의 장소로 끊임없이 회복되어야 하며, 그것이 곧 십자가가 보여준 사랑의 원형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분노가 허문 장벽, 다시 세우는 제단

우리는 성경 속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진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탐욕과 이기심으로 얼룩져 강도의 소굴로 전락해 버린 성전을 뒤엎으시던 그 장면은, 단순한 감정적 분노가 아니라 잃어버린 복음의 순수성을 되찾고자 하는 숭고한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성전 정화 사건을 진정한 교회 개혁의 영원한 모델로 제시합니다. 종교개혁가들이 피 토하는 심정으로 부르짖었듯, 교회는 굳어버린 제도나 소수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대신 깊이 있는 성경 묵상과 간절한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해야 합니다. 참된 신학적 통찰은 화려한 건축물이나 복잡한 교리가 아니라, 제단 앞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성도들의 진실한 기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법입니다.

하늘을 덮는 겸손, 경계를 허무는 솔로몬의 간구

이러한 성전의 참된 의미는 솔로몬의 봉헌 기도에서 더욱 장엄하게 피어납니다. 성전을 완공한 후 솔로몬은 위대한 업적을 자랑하기보다, 광대한 하늘조차 다 품을 수 없는 창조주 앞에 엎드려 인간의 유한함을 처절하게 고백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겸비한 태도야말로 교회를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결코 잃지 말아야 할 영적 자산임을 역설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기도의 시선이 이스라엘이라는 좁은 혈통의 울타리를 넘어 저 멀리 이방인들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낯선 이방인이라도 성전을 향해 부르짖으면 그 기도를 들어달라는 솔로몬의 간구는, 곧 조건 없는 구원의 선포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에서 이방인과 세상의 소외된 자들을 향해 문턱을 한없이 낮추어야 하는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다시 한번 강변합니다.

낡은 벽돌 위에 피어나는 청년의 찬양, 임마누엘의 숨결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고풍스러운 예배당의 낡은 벽돌 사이로, 어느 날 젊은 청년들의 뜨거운 찬양 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오랜 전통이 주는 거룩한 무게감과 젊은 세대의 역동적인 영적 활력이 아름답게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커네티컷 임마누엘 채플의 헌당 예배 당시, 장재형 목사는 과거 가톨릭 사제실로 쓰이던 방에서 젊은이들의 찬양이 울려 퍼지는 것을 들으며 깊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단절된 역사가 하나로 이어지고, 서로 다른 전통 속에 있던 이들이 한 하나님 안에서 연합하는 은혜의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 삶 자체가 살아 숨 쉬는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장재형 목사가 제시하는 궁극적인 비전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굳건한 약속을 가슴에 품고,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서 그 영광을 삶으로 증명해 내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렘브란트의 그림 속 눈먼 아버지처럼 두 팔을 넓게 벌려 세상을 끌어안을 때, 비로소 이 땅에는 메마르지 않는 생명수의 강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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降临在干涸旷野上的甘霖 –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太阳炽烈得仿佛要刺穿头顶,脚下的沙子也不停地缠住脚踝、拖住步伐。白昼的灼热与夜晚刺入骨髓的寒冷无情交替,这就是贫瘠荒凉的旷野。这里既是生存危机每时每刻都扼住人呼吸的地方,同时也是天降吗哪、干裂磐石涌出生水的神迹现场。几千年前,以色列百姓穿行在这狂暴的沙风之中,亲眼目睹红海分开的壮阔奇景,却又在舌尖片刻的干渴与饥饿面前,轻易忘记了昨日那宏大的神迹。人的记忆,人的信仰,原来竟如此软弱,像风中摇曳、轻易动摇的芦苇一般。

散落在风沙中的神迹记忆与恩典的重量

我们的信仰旅程,往往就像行走在这无边无际的旷野之中。昨天还因那引导我前行的云柱同在而热泪盈眶,今天却又被眼前现实的重压与匮乏所吞没,向着天空射出埋怨的箭矢。张大卫没有回避《哥林多前书》第10章所贯穿的这道痛苦的属灵裂缝,反而带领我们直面它。他指出,我们所享有的丰盛属灵经验与宗教特权,绝不能成为自动保障救恩的安全装置。正如那头顶油瓶行走之人的比喻,自以为站立得稳、昂首挺胸、心怀自满的人,最终反而会把那宝贵的恩典徒然倾倒在干旱旷野的沙土之上。他的讲道提醒我们:人正是在自认安全的那一刻,开始走向属灵危机与堕落。对于活在宗教项目繁多、知识丰富而精致的现代基督徒而言,这是一份清冷却必不可少的生命警醒。

急躁所铸成的偶像,以及《魔鬼家书》的狡猾低语

旷野中反复上演的人性软弱,竟与20世纪最伟大的基督教护教家之一C.S. 路易斯(C.S. Lewis)的经典名著《魔鬼家书》(The Screwtape Letters)中,那老练恶魔的狡猾策略惊人地相通。恶魔“史古基”(Screwtape)教导外甥“伍姆伍德”(Wormwood),要使人堕落,并不需要驱使他们去犯下骇人听闻的大罪;只要巧妙地助长他们对未来的“焦虑”,让日常中的小小“怨恨”与“不满”层层堆积,就已经足够。因为人一旦不再安静等候、信靠那看不见的上帝,转而急于用自己的力量掌控眼前的不确定,最终就会被拖入偶像崇拜的泥沼。

正如这部伟大经典所显出的尖锐洞见,张大卫也以犀利的神学眼光指出:现代人在不确定的明天面前,正紧紧抓住名为金钱、成就与他人评价的“玛门”,仿佛那才是得救的根基。唯有上帝的话语,才是平息灵魂焦虑与饥渴的唯一道路,而不是这终将朽坏的世界之粮。当我们借着每日的圣经默想,把那看不见的永恒应许当作日常的粮食来领受时,便能脱离魔鬼狡猾的低语和金牛犊的诱惑,最终进入真正的平安。

伪装成干渴的骄傲,在缓慢顺服中绽放的温柔

偶像崇拜浓重的阴影,必然会延伸为对盟约关系的破坏,也就是淫乱,并进一步演变为对上帝粗暴的怨言与骄傲的试探。以色列人因缺乏水和食物,便质问说:“上帝真的活在我们中间吗?”要求祂立刻证明神迹。这样的景象何等熟悉。它正与今日的我们完全重叠:当祷告没有照着我的计划立刻蒙应允时,我们便像债主一般,朝着天挥手指责。

在这种属灵倦怠与怀疑的时刻,张大卫提出了一剂强有力的解药,用以医治“感恩的失忆症”——那就是日常中朴素而重复的操练。清晨睁眼时轻声说出一句感谢,在苦难与委屈之中仍记念十字架的福音,并迈出缓慢顺服的一步。正是这些看似微小、毫不起眼的行动,一点一点松动那早已板结的心田,孕育出名为“温柔”的强大属灵肌力。唯有丢弃那种想凭自己征服世界、证明自己的急躁,在盼望中忍耐、以柔和之心等候应许的人,最终才能承受上帝早已预备好的荣耀产业。

将日常翻译为荣耀的朝圣者圣洁脚步

旷野绝不是为了使我们枯干而死的灭亡之地。它乃是神圣的训练场,使我们学会承认自己的彻底有限,并全然倚靠从天而来的信实供应而行走。“你们所遇见的试探,无非是人所能受的……在受试探的时候,总要给你们开一条出路,叫你们能忍受得住。”保罗的这番告白,既使我们谦卑降卑,也同时显明那使人得以喘息的恩典高峰。

张大卫强调,这应许中的“出路”并不是某一天突然从天而降、像绳索一般垂到我们面前的奇迹。它乃是一种极其现实而具体的顺服决断:提前识别自己的软弱之处,切断通向罪恶的环境,并且连跌倒之后如何恢复,也与群体一同预备。最后那句“无论吃什么,喝什么,都要为荣耀上帝而行”的劝勉,归根结底,就是庄严地呼召我们:把平凡的餐桌、疲惫的劳作,以及日常每一个瞬间,都升华为敬拜。当我们甘心放下自己的自由与权利,选择弟兄的益处与爱时,即便身处炽热的旷野中央,那滋润灵魂的圣洁活水也绝不会停止涌流。

今天,你正含泪走过的那片旷野,名字是什么?是经济上的悬崖边缘,是关系里刺痛的断裂,还是在反复失败中累积的疲惫感?答案的道路其实始终如一。让我们跟随张大卫所提出的感恩、话语与顺服的节奏,今天也继续默默前行。愿你终能借着这简单却深刻的步伐,找到那条“出路”,成为一位将日常翻译为上帝荣耀的灿烂朝圣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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干からびた荒野に降る慈雨 – 張ダビデ 牧師 (Olivet University)

張ダビデ 牧師

太陽は頭上を刺し貫くかのように灼けつき、足元の砂は絶え間なく足首にまとわりつく。昼の熱気と、夜には骨身にしみる冷気とが無慈悲に交差する不毛の地、それが荒野である。ここは、生存への脅威が一瞬ごとに息の根を締めつける場所であると同時に、天からマナが降り、乾いた岩から生ける水が湧き出る奇跡の現場でもある。数千年前、イスラエルの民はこの荒々しい砂嵐の中を進みながら、紅海が分かれる壮大な光景を自らの目で見た。にもかかわらず、舌先に触れる一瞬の渇きと空腹の前で、昨日の大いなる奇跡をあまりにもたやすく忘れてしまった。人間の記憶とは、そして私たちの信仰とは、それほどまでに弱く、すぐ揺らいでしまう葦のようなものなのだ。

砂嵐の中に散った奇跡の記憶と、恵みの重み

私たちの信仰の旅路は、しばしば果ての見えないこの荒野を歩くことに似ている。昨日は、前を導く雲の柱の臨在に胸を熱くして涙したのに、今日は目の前に迫る現実の重みと欠乏に押しつぶされ、天に向かって不平の矢を放ってしまう。張ダビデは、コリント人への第一の手紙10章を貫くこの痛ましい霊的断絶から目をそらさず、私たちが真正面から向き合うよう導く。彼は、私たちが享受してきた豊かな霊的体験や宗教的特権が、決して救いを自動的に保証する安全装置にはなりえないことを指摘する。頭の上に油で満たされた器を載せて歩く者のたとえのように、自分はもう堅く立っていると高ぶり、胸を張って歩む者は、結局その尊い恵みを、乾ききった荒野の砂の上にむなしくこぼしてしまう。自分は安全だと思い込むその瞬間こそが、霊的危機と堕落の始まりであることを呼び覚ます彼の説教は、宗教的プログラムと洗練された知識の豊かさの中で生きる現代のクリスチャンたちに、冷ややかでありながらも必ず必要な命の警鐘を与えてくれる。

焦りが生み出した偶像、そしてスクルーテープの狡猾なささやき

荒野で繰り返される人間の弱さは、20世紀最高のキリスト教弁証家の一人であるC.S.ルイス(C.S. Lewis)の古典的名作『悪魔の手紙(The Screwtape Letters)』に登場する老練な悪魔の狡猾な戦略と、驚くほど重なり合っている。悪魔スクルーテープは甥のワームウッドに、人間を堕落させるために大げさで恐ろしい犯罪を犯させる必要はないと教える。ただ未来への「不安」を巧妙にあおり、日々の小さな「つぶやき」や「不平」を幾重にも積み重ねさせれば、それで十分だというのだ。目に見えない神を信頼して静かに待つ代わりに、今目の前にある不確かさを自分の力で支配しようとする焦りこそが、結局人間を偶像礼拝の沼へと引きずり下ろすからである。

この偉大な古典の鋭い洞察のように、張ダビデは、現代人が不確かな明日を前にして、金や成功、他人からの評判という名のマモンを、あたかも救いの土台であるかのように握りしめる現象を、鋭い神学的洞察によってえぐり出す。魂の不安と飢えを鎮める唯一の道は、朽ちてなくなるこの世のパンではなく、ただ神の御言葉だけである。日々の聖書黙想を通して、目には見えない永遠の約束を日常の糧として食する時、私たちは悪魔の巧妙なささやきと金の子牛の誘惑から解き放たれ、ようやく真の平安を味わうことができる。

渇きを装った高慢、ゆっくりとした従順の中に花開く柔和

偶像礼拝の濃い影は、必然的に契約関係の破壊である淫行へ、さらに神に向かう荒々しいつぶやきと高慢な試みへとつながっていく。水と食べ物が足りないという理由で、「神は本当に私たちのただ中に生きておられるのか」と問い、目の前で奇跡を証明するよう求めたイスラエルの姿はどうだろうか。それは今日、私の計画どおりに祈りが即座にかなえられない時、まるで債権者のように天に向かって指を突きつける私たち自身の歪んだ自画像と、正確に重なっている。

このような霊的バーンアウトと疑いの瞬間に、張ダビデは「感謝の記憶喪失」を癒やす強力な解毒剤として、日常における素朴で反復的な訓練を提案する。朝、目を開けながら口にする感謝のひと言、苦難と悔しさの中でも十字架の福音を思い起こしつつ踏み出す、ゆっくりとした従順の一歩。この小さく取るに足らなく見える行いの積み重ねが、固くなった心の土壌をやわらかく耕し、「柔和」という力強い霊的筋力を宿らせる。自分の力で世界を征服し証明しようとする焦りを捨て、希望のうちに忍耐し、柔らかな心で約束を待ち望む者だけが、ついには神の備えられた栄光の嗣業を受け継ぐことができる。

日常を栄光へと翻訳する巡礼者の聖なる足取り

荒野は決して、私たちを干からびて死なせるための滅びの地ではない。それは、自分の徹底した限界を認め、天からの真実な備えに全面的により頼んで歩く術を学ぶ、聖なる訓練所なのである。「あなたがたの会った試練はみな人の知らな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神は試練とともに、それに耐えられるよう、逃れる道も備えていてくださいます」というパウロの告白は、私たちをへりくだらせながら、同時に息をつかせてくれる恵みの頂点を示している。

張ダビデは、この約束された「逃れる道」が、ある日突然天から綱のように降ってくる奇跡ではないことを強調する。それは、自分の弱い部分をあらかじめ見極めて罪の環境を遮断し、倒れた後の回復に至るまで共同体とともに備える、きわめて現実的で具体的な従順の決断である。食べるにも飲むにも、すべてを神の栄光のためにせよという最後の勧めは、結局のところ、私たちの平凡な食卓と重たい労働、日常のあらゆる刹那を礼拝へと昇華させよという壮大な召しなのである。私たちが自分の自由と権利の代わりに、兄弟の益と愛を喜んで選び取る時、焼けつくような荒野のただ中にあっても、魂を潤す聖なる生ける水は決して止むことなく湧き上がるだろう。

今日、あなたが涙で歩いているその荒野の名は何だろうか。経済的な崖っぷちであれ、関係の痛ましい断絶であれ、繰り返される失敗の疲労感であれ、答えへの道は同じである。張ダビデが示した感謝と御言葉、従順のリズムに従って、今日という一日も黙々と歩んでみよう。その単純でありながら深い歩幅の中で、ついに「逃れる道」を見いだし、日常を神の栄光へと翻訳していく、輝かしい巡礼者となることを心から願う。

日本オリベットアッセンブリー教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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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uvia bienhechora sobre el desierto reseco – Pasto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or David Jang

El sol arde como si quisiera perforar la coronilla, y la arena bajo los pies se aferra sin cesar a los tobillos. La dureza del calor del día y el frío penetrante de la noche se alternan sin piedad en esta tierra estéril: el desierto. Es un lugar donde la amenaza de la supervivencia aprieta la garganta a cada instante, y al mismo tiempo, el escenario de milagros donde el cielo hace descender el maná y brota agua viva de la roca seca. Hace miles de años, el pueblo de Israel avanzó en medio de aquel áspero vendaval de arena y contempló con sus propios ojos la majestuosidad del mar Rojo abriéndose en dos; pero ante la sed y el hambre pasajeras que rozaban la punta de la lengua, olvidó con demasiada facilidad el gran milagro del día anterior. Así de frágil es la memoria humana, y así de vacilante es también nuestra fe, como una caña que se dobla con facilidad.

Los recuerdos de milagros dispersados por la tormenta de arena y el peso de la gracia

Nuestro caminar en la fe se parece a menudo a recorrer este desierto interminable. Ayer, con el corazón desbordado por la presencia de la columna de nube que nos guiaba, derramábamos lágrimas de emoción; pero hoy, aplastados por el peso y la carencia de la realidad inmediata, terminamos lanzando flechas de queja hacia el cielo. David Jang no elude esta dolorosa brecha espiritual que atraviesa 1 Corintios 10, sino que nos conduce a mirarla de frente. Señala que las abundantes experiencias espirituales y los privilegios religiosos de los que hemos disfrutado jamás pueden convertirse en un dispositivo de seguridad que garantice automáticamente la salvación. Como en la imagen de quien camina cargando sobre la cabeza una vasija llena de aceite, el paso altivo de quien presume estar ya firme y mantiene la cabeza erguida acaba derramando en vano esa preciosa gracia sobre la arena reseca del desierto. Su predicación, que nos recuerda que precisamente el instante en que uno se cree seguro puede marcar el comienzo de una crisis espiritual y de la caída, transmite a los cristianos contemporáneos —que viven rodeados de abundancia de programas religiosos y de conocimientos refinados— una alerta sobria, pero indispensable, para la vida.

El ídolo forjado por la impaciencia y el astuto susurro de Screwtape

La debilidad humana que se repite en el desierto conecta de manera sorprendente con la estrategia astuta del demonio veterano que aparece en la obra clásica de C. S. Lewis, uno de los mayores apologistas cristianos del siglo XX, Cartas del diablo a su sobrino (The Screwtape Letters). El demonio Screwtape enseña a su sobrino Wormwood que, para hacer caer al ser humano, no hace falta empujarlo a crímenes grandiosos y espantosos. Basta con fomentar hábilmente la “ansiedad” por el futuro y hacer que se acumulen, una sobre otra, las pequeñas “quejas” y “murmuraciones” de la vida diaria. En lugar de confiar en Dios, a quien no vemos, y esperar en silencio, la prisa por controlar con nuestras propias fuerzas la incertidumbre que tenemos delante termina arrastrando al ser humano al pantano de la idolatría.

Con la misma agudeza de esta gran obra clásica, David Jang señala con profunda perspicacia teológica cómo el hombre moderno, ante la incertidumbre del mañana, se aferra al mamón llamado dinero, éxito y reputación ajena como si fueran el fundamento de la salvación. El único camino para apaciguar la ansiedad y el hambre del alma no es el pan perecedero de este mundo, sino únicamente la Palabra de Dios. Cuando, por medio de la meditación bíblica diaria, nos alimentamos de las promesas eternas e invisibles como pan cotidiano, podemos al fin liberarnos de los astutos susurros del diablo y de la tentación del becerro de oro, y disfrutar de la verdadera paz.

El orgullo disfrazado de sed y la mansedumbre que florece en la obediencia lenta

La sombra oscura de la idolatría conduce inevitablemente a la inmoralidad sexual, que es la destrucción de la relación del pacto, y también a la áspera murmuración contra Dios y a la prueba arrogante de su fidelidad. ¿Qué vemos en Israel, que, por falta de agua y alimento, exigía una prueba inmediata diciendo: “¿De verdad está Dios vivo en medio de nosotros?”? Esa imagen coincide exactamente con nuestro retrato deformado de hoy, cuando, al no recibir respuesta inmediata a la oración según nuestros planes, señalamos al cielo como si fuéramos acreedores reclamando una deuda.

En esos momentos de agotamiento espiritual y duda, David Jang propone como poderoso antídoto contra la “amnesia de la gratitud” una disciplina sencilla y repetida en la vida diaria. Una frase de agradecimiento pronunciada al abrir los ojos por la mañana; un paso lento de obediencia dado mientras recordamos el evangelio de la cruz aun en medio del sufrimiento y de la injusticia. Estos actos pequeños, que parecen insignificantes, se reúnen para labrar suavemente el terreno endurecido del corazón y engendrar una poderosa fortaleza espiritual llamada “mansedumbre”. Solo quien abandona la prisa por conquistar y demostrar el mundo con sus propias fuerzas, y espera la promesa con un corazón apacible, perseverando en la esperanza, podrá finalmente heredar la gloriosa posesión que Dios ha preparado.

Los santos pasos del peregrino que traducen la vida cotidiana en gloria

El desierto no es, en absoluto, una tierra de destrucción destinada a secarnos y matarnos. Es un santo campo de entrenamiento donde aprendemos a reconocer por completo nuestros límites y a caminar apoyándonos enteramente en la provisión fiel del cielo. La confesión de Pablo —“No os ha sobrevenido ninguna tentación que no sea humana… sino que, junto con la tentación, dará también la salida, para que podáis soportarla”— muestra la cumbre de una gracia que al mismo tiempo nos humilla y nos devuelve el aliento.

David Jang subraya que esta prometida “vía de escape” no es un milagro que cae repentinamente del cielo como una cuerda salvadora. Es una decisión de obediencia sumamente realista y concreta: identificar de antemano nuestros puntos débiles, bloquear los entornos que favorecen el pecado y preparar, junto con la comunidad, incluso la restauración después de la caída. La exhortación final —que comáis o bebáis, hacedlo todo para la gloria de Dios— es, en definitiva, un solemne llamado a elevar nuestra mesa cotidiana, nuestro trabajo fatigoso y cada instante ordinario de la vida al nivel de la adoración. Cuando, en lugar de elegir nuestra propia libertad y nuestros derechos, escogemos de buena gana el bien y el amor del hermano, incluso en medio del desierto abrasador seguirá brotando sin cesar el agua viva y santa que empapa el alma.

¿Cuál es el nombre del desierto que hoy recorres entre lágrimas? Ya sea el borde de un precipicio económico, la amarga ruptura de una relación o el cansancio de fracasos repetidos, el camino de la respuesta es el mismo. Caminemos hoy también, en silencio y con constancia, siguiendo el ritmo de gratitud, Palabra y obediencia que propone David Jang. Espero sinceramente que, con ese paso sencillo y profundo, logres finalmente encontrar la “vía de escape” y te conviertas en un peregrino resplandeciente que traduzca la vida cotidiana en la gloria de 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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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 pluie bienfaisante sur le désert aride – Pasteur David Jang (Olivet University)

Pasteur David Jang

Le soleil brûle comme s’il allait percer le sommet du crâne, et le sable sous les pieds s’agrippe sans relâche aux chevilles. Terre stérile où se croisent sans pitié la chaleur du jour et le froid nocturne qui transperce jusqu’aux os, le désert est à la fois un lieu où la menace de la survie serre la gorge à chaque instant, et le théâtre de miracles où le ciel fait tomber la manne et où l’eau vive jaillit du rocher desséché. Il y a des milliers d’années, le peuple d’Israël a traversé ce rude vent de sable et a vu de ses propres yeux la majesté de la mer Rouge se fendre. Pourtant, face à la soif et à la faim du moment, il a oublié avec une étonnante facilité les grands miracles de la veille. La mémoire humaine, et notre foi elle-même, ressemblent à ce roseau si fragile, prompt à vaciller au moindre vent.

La mémoire des miracles dispersée dans le vent de sable, et le poids de la grâce

Notre marche de foi ressemble souvent à une traversée de ce désert sans fin. Hier encore, bouleversés jusqu’aux larmes par la présence de la nuée qui nous guidait, nous levions les yeux avec reconnaissance. Aujourd’hui, accablés par le poids du réel et par le manque immédiat, nous lançons vers le ciel des flèches de murmure. David Jang ne détourne pas le regard de ce douloureux écart spirituel qui traverse 1 Corinthiens 10 ; il nous conduit à l’affronter en face. Il rappelle que l’abondance de nos expériences spirituelles et de nos privilèges religieux ne peut jamais constituer un dispositif de sécurité garantissant automatiquement le salut. Comme dans l’image de celui qui marche en portant sur la tête un vase plein d’huile, celui qui relève fièrement la tête en se croyant déjà solidement debout finit par répandre en vain cette grâce précieuse sur le sable desséché du désert. Sa prédication, en nous avertissant que l’instant même où l’on se croit en sécurité peut marquer le début de la crise spirituelle et de la chute, apporte aux chrétiens d’aujourd’hui — qui vivent au milieu de programmes religieux raffinés et d’une abondance de savoir — une alerte salutaire, sévère mais indispensable.

L’idole façonnée par l’impatience, et le murmure rusé de Screwtape

La faiblesse humaine qui se répète au désert rejoint de manière saisissante la stratégie sournoise du vieux démon dans le grand classique de C.S. Lewis, The Screwtape Letters (Lettres de Screwtape). Screwtape enseigne à son neveu Wormwood qu’il n’est pas nécessaire, pour faire tomber l’être humain, de le pousser à commettre des crimes grandioses et terrifiants. Il suffit de nourrir habilement en lui l’« anxiété » à propos de l’avenir, puis d’empiler les petits « ressentiments » et les « plaintes » du quotidien. Car au lieu de faire confiance au Dieu invisible et d’attendre dans le silence, l’impatience qui veut contrôler par ses propres forces l’incertitude du présent finit par entraîner l’homme dans le marécage de l’idolâtrie.

Dans la ligne de cette intuition acérée, David Jang met en lumière, avec une pénétration théologique remarquable, la manière dont les hommes et les femmes d’aujourd’hui s’agrippent au mammon — argent, réussite, réputation — comme s’il s’agissait du fondement même du salut. Pourtant, le seul chemin capable d’apaiser l’angoisse et la faim de l’âme n’est pas le pain périssable de ce monde, mais la parole de Dieu seule. Lorsque, par la méditation quotidienne de l’Écriture, nous recevons comme nourriture ordinaire les promesses éternelles que l’on ne voit pas encore, nous pouvons enfin échapper aux chuchotements rusés du diable et à la tentation du veau d’or pour entrer dans une paix véritable.

L’orgueil déguisé en soif, et la douceur qui fleurit dans l’obéissance lente

L’ombre épaisse de l’idolâtrie conduit inévitablement à la rupture de l’alliance — à l’impudicité — puis aux murmures violents contre Dieu et à l’orgueil qui ose le mettre à l’épreuve. Que révèle l’attitude d’Israël lorsqu’il exigeait, faute d’eau et de nourriture, une preuve immédiate en disant : « Dieu est-il vraiment vivant au milieu de nous ? » Elle reflète exactement notre propre visage déformé lorsque, voyant nos prières ne pas recevoir de réponse immédiate selon nos plans, nous pointons le doigt vers le ciel comme des créanciers.

Dans ces instants de burn-out spirituel et de doute, David Jang propose, comme antidote puissant contre cette « amnésie de la gratitude », un entraînement simple et répétitif au cœur du quotidien. Une seule phrase de reconnaissance murmurée au réveil ; un pas lent d’obéissance posé au milieu de l’épreuve et de l’injustice, en se souvenant de l’Évangile de la croix. Ces gestes, petits et insignifiants en apparence, se rassemblent pour labourer en douceur le sol durci du cœur et faire naître une force spirituelle puissante appelée « douceur ». Seul celui qui renonce à l’impatience de vouloir conquérir le monde et faire ses preuves par sa propre force, qui persévère dans l’espérance et attend la promesse avec un cœur humble et doux, pourra finalement hériter de la gloire que Dieu a préparée.

Les pas saints du pèlerin qui traduisent le quotidien en gloire

Le désert n’est jamais une terre de destruction destinée à nous laisser sécher et mourir. C’est un lieu saint d’apprentissage, où nous reconnaissons radicalement nos limites et apprenons à marcher en nous appuyant entièrement sur la provision fidèle du ciel. La confession de Paul — « Aucune tentation ne vous est survenue qui n’ait été humaine… avec la tentation, il préparera aussi le moyen d’en sortir, afin que vous puissiez la supporter » — révèle un sommet de grâce qui nous abaisse dans l’humilité tout en redonnant souffle à notre âme.

David Jang souligne que cette « voie de sortie » promise n’est pas un miracle tombé du ciel comme une corde lancée soudainement. C’est une décision d’obéissance profondément réaliste et concrète : discerner d’avance nos points de fragilité pour couper l’accès aux environnements du péché, et préparer avec la communauté même la restauration après la chute. L’exhortation finale — faire toutes choses, que l’on mange ou que l’on boive, pour la gloire de Dieu — est en réalité un appel majestueux à transfigurer notre table ordinaire, notre travail épuisant et chaque instant de la vie quotidienne en acte d’adoration. Lorsque nous choisissons volontiers le bien et l’amour du frère plutôt que notre liberté et nos droits, alors, même au cœur du désert brûlant, l’eau vive qui abreuve l’âme ne cesse jamais de jaillir.

Quel est aujourd’hui le nom du désert que vous traversez en larmes ? Qu’il s’agisse du bord du précipice économique, d’une rupture relationnelle douloureuse ou de la fatigue accumulée par des échecs répétés, le chemin de la réponse demeure le même. Suivons aujourd’hui encore, en silence et avec fidélité, le rythme de la gratitude, de la Parole et de l’obéissance que propose David Jang. Puisse ce pas simple et profond nous conduire à découvrir enfin la voie de sortie, afin que nous devenions de lumineux pèlerins capables de traduire le quotidien en gloire pour D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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