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 설교 묵상: 은혜로 받은 은사, 하나의 몸을 세우다 (Olivet University)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다성음악(Polyphony)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서로 다른 독립된 선율들이 허공에서 부딪치거나 흩어지지 않고 마침내 하나의 장엄한 화성으로 융합되는 경이로운 신비에 압도된다. 저마다의 음자리가 다르고 고유한 리듬과 템포를 지녔으나, 그 모든 다채로운 소리는 결국 절대자를 향한 단 하나의 찬양으로 수렴된다. 장재형 목사의 고린도전서 12장과 로마서 12장 강해를 마주할 때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영적 풍경도 이 깊은 음악적 숭고함과 맞닿아 있다. 첫 문단에서 열어젖히는 영적 지평선 위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진 신령한 은사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몸 안에서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힘차게 박동하는지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다름이 분열의 씨앗이나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고, 오히려 온전한 교회를 떠받치는 필수적인 기둥이 되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은 추상적인 교리의 틀 안에 갇혀 있지 않다. 하나의 주님, 하나의 성령, 하나의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위대한 은총이 사람과 직분과 사역의 다채로운 형태로 분배되어 공동체를 세우는 이 절대적 원리는 우리의 좁은 시야를 넓혀준다.

은혜가 빚어낸 영적 선물, 십자가 복음이 여는 평등의 자리

말씀이 여는 첫 관문은 은사의 본질을 투명하게 직시하는 일이다. 은사라는 단어의 헬라어 뿌리가 ‘카리스’, 곧 은혜에 닿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 여정에 중대한 이정표를 세운다.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은 애초에 인간의 공로나 자격을 묻지 않으며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과 사역 속에서 누리고 있는 재능과 기회, 직분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쟁취해 낸 성취의 트로피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벅찬 감사의 이유이자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의 책임이다. 이 복음의 진리가 영혼 깊숙이 닻을 내릴 때, 비로소 타인과 나를 저울질하며 시기하거나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는 파괴적인 비교의 독이 말끔히 빠져나간다. 과거 우상들의 침묵 속을 떠돌던 우리가 이제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하게 된 그 근본적인 전환 자체가 모든 은사의 문을 여는 첫 열쇠다. 누구나 동일한 은혜의 문을 통과했기에 누구도 우월할 수 없으며, 각자에게 지혜를 따라 다른 은사가 배당되었기에 교회 안에서 불필요한 존재란 성립할 수 없다.

믿음의 분량으로 피어나는 일상, 거룩한 소명의 길

장재형 목사의 메시지는 성전 뜰 안의 안전한 지대에만 머물지 않고, 신자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치열한 직업의 영역으로 성큼 걸음을 옮긴다. 매서운 박해를 피해 유럽 대륙으로 흩어져야만 했던 위그노들이 낯선 땅에서의 고단한 생존을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Calling)으로 받아들인 역사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들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 이룩한 정밀기계와 금융, 의류 산업의 빛나는 성취는 자신이 흘리는 땀방울을 예배의 거룩한 연장선으로 해석해 낸 탁월한 신학적 통찰의 열매였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일터와 내가 쥐고 있는 직업이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영광스러운 자리임을 자각할 때, 일의 품격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한다. 로마서 12장에 기록된 ‘믿음의 분량’이라는 언어는 이 소명의 논리를 정교하게 깎아낸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하나님이 지혜롭게 배분하신 분량에 합당하게 자신을 이해하라는 권면은 도덕적 겸양을 넘어선 신학적 명령이다. 손이 걸음을 대신할 수 없고 발이 시력을 대신할 수 없듯,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각자의 몫을 성실히 지킬 때 그리스도의 몸은 온전하게 세워진다.

성경 묵상으로 벼려낸 영적 분별과 하나 됨의 신비

고린도전서 12장과 로마서 12장에 열거된 은사의 목록들을 가만히 묵상하면, 그것이 세상을 섬기고 교회를 살리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생명의 동맥임을 깨닫게 된다. 초대 안디옥 교회에서 예언의 은사가 선두에 놓였던 이유는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교회의 항로를 비추는 영적 등대였기 때문이다. 섬김은 공동체의 연약한 구조를 든든히 지탱하고, 가르침은 진리를 체화시키며, 구제와 긍휼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따뜻한 온기를 유지해 준다. 지혜와 지식의 말씀, 치유와 능력을 행하는 하늘의 힘(dýnamis)은 죄의 무감각을 깨우고 굳은 마음을 소생시킨다. 특히 정보와 소음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무엇이 내면의 헛된 욕망인지 식별해 내는 영 분별의 은사는 생명줄과도 같다. 개인의 깊은 탄식을 담아내는 방언의 기도 역시 공동체 안에서는 통역이라는 은사를 통해 연합의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은사는 철저히 나의 영적 체험을 넘어 우리의 공적인 유익으로 번역될 때 그 거룩한 목적을 완수한다.

소망을 품고 드리는 참된 예배와 남은 자의 헌신

장재형 목사가 전하는 이 풍성한 은사론은 개인의 영성을 넘어 교육과 문화, 제도의 영역으로 과감히 뻗어 나간다. 학문적 다양성이 무한히 확장되더라도 ‘하나님 영광’이라는 단 하나의 통일성에 닻을 내리지 않으면 결국 세속의 조류에 휩쓸려 쇠락하고 만다는 서구 대학들의 역사는 묵직한 경고다. 오유(OU)와 같은 기독교 교육 기관이 “교회 선교에 필요한 글로벌 리더십 양성”이라는 십자가 복음의 중심성을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거룩한 사명은 오직 참된 예배의 회복을 통해서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목소리로 눈물 흘려 찬양하며 찢긴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의 신비 안에서, 파편화된 우리가 다시 온전한 몸으로 조립되는 이 경이로운 경험은 결코 차가운 스크린을 통과할 수 없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거친 세상에서 상처받은 잃어버린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다시 살아낼 영적 탄력을 공급받으라는 거룩한 배려다.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나누셨고,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은사에 대한 이 명쾌한 선언은 남은 생애를 뒤흔드는 복음의 메아리다. 전문화와 고립을 동시에 겪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빛으로 존재하려면, 은사의 전문성(깊이)과 하나님 나라라는 방향성이 정확히 일치해야만 한다. 강단과 삶의 현장, 리더십과 묵묵한 팔로워십은 서로를 밀어내는 경쟁자가 아니라 거룩한 짝이다. 은사의 파괴적인 경쟁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은사의 헌신적인 교환은 무너진 공동체의 생명력을 폭발적으로 살려낸다. 오늘 당신은 서로의 다름을 분열의 핑계로 삼고 있는가, 아니면 더 큰 온전함을 빚어내는 은혜의 벽돌로 삼고 있는가. 은혜로 값없이 받은 것을 철저히 은혜의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진실한 예배자가 진정 하나님이 이 시대에 찾으시는 희망임을 묵묵히 묻고 또 기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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